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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그후 10년] (2부-10) 글로벌 스탠더드의 허실

■ '외환위기 그후 10년' 한국경제 좌표 <제2부> 구조조정의 빛과 그림자<br>단기·일방적 강요 폐해불구 성과도 커<br>부채비율 축소·재벌중심 한국형 발전모델 해체등<br>'4만弗국가 룰' 한꺼번에 도입 "성장잠재력 훼손"



“뉴브릿지에 제일은행을 매각한 것을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지난 2005년1월14일 당시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첫 정례 브리핑 자리. 이 전 부총리는 “외환위기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국제적인 신인도 등을 고려해 불가피했다”면서도 “당초 기대했던 선진금융기법 도입 등의 효과는 전혀 얻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제일은행을 매각한지 5년만에 사실상 ‘과오’를 자인한 셈이었다. 이 같은 발언은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금융을 대가로 한국에 요구했던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 즉 영미식 금융 자본주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IMF에 의해 단기간에 강제 유입되면서 한국경제에 뼈아픈 손실을 끼쳤다는 얘기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뉴브릿지 같은 벌처펀드(vulture fundㆍ파산 기업 등을 싼값에 인수해 비싼값에 되파는 자금)에 은행을 매각하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며 “미국 월스트리트 자본의 이해가 IMF 개혁 프로그램에 교묘하게 녹아 들어가면서 투기 자본의 배만 불려준 꼴”이라고 말했다. ◇단기간에 강요된 글로벌 스탠더드 = “아시아 경제위기의 결과 중 하나는 서방에서, 특히 미국에서 실행됐던 시장자본주의가 우월한 모델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98년 3월3일 미국 상원청문회에서 그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이처럼 미국은 아시아 경제위기를 전세계로 영미식 금융 자본주의를 전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 “구제금융 조건은 IMF내 미국측 이사의 목소리와 의결권에 의해 정해졌다”(미 싱크탱크인 랜드 연구소의 찰스 울프 선임연구원)는 발언이 공공연할 정도였다. 실제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아시아 국가에 대한 IMF 프로그램의 60% 이상이 금융 부문에 집중됐다. 이 같은 금융 주도의 개혁은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자기자본비율(BIS)이 지방은행까지 획일적으로 적용됐고, 부실은행은 해외자본에 매각됐다. 재벌에 대해서는 부채비율 축소, 상호지급보증 해소 등의 정책을 도입해 신속한 재무구조 개선을 강요했다. 손병두 서강대 총장은 “450%대였던 부채비율을 2년만에 200% 미만으로 떨어뜨리라고 했는데 엄청난 무리수였다. 일본은 500%에서 200%로 내려오는데 20년 걸렸다”고 비판했다. 어린아이에 너무 큰 옷을 입히다 보니 문제가 여기저기서 불거졌다. 은행이 위험이 높은 기업 금융을 외면하고 손쉬운 가계 대출을 선호하면서 또다른 위기 요인으로 등장했다. 주요 시중은행과 기업들이 외국자본에 헐값에 매각됐고 상시적인 구조조정으로 고용 불안을 부추겼다. 기업들은 단기 실적에 연연해 투자를 기피하는 바람에 특유의 역동성이 떨어졌다. 윤 교수는 “언젠가는 받아들여야할 시스템이지만 영국과 미국처럼 국민소득 4만 달러에 맞는 모범 답안이 너무 급격하게 무비판적으로 들어온 게 문제였다”며 “열탕에 있다가 갑자기 냉탕으로 들어가다 보니 심장에 무리를 준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형 발전모델이 해체되다= 이 같은 IMF 프로그램의 최종 목적은 정부와 재벌이 동맹을 맺고 대형 사업에 진출한 뒤 리스크는 금융 부문이 부담하는 이른바 ‘정부-재벌-금융간 3각 체제’를 끊어 한국형 선단식 경영을 종식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DJ 정부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재벌의 영향력을 줄이려 했다”며 “월스트리트 모델을 지지하는 정부 관료들이 글로벌스탠더드를 교조적, 급진적으로 도입하면서 한국형 발전모델의 도전적 요소가 제거됐다”고 말했다. 더구나 재벌의 손발을 묶기 위한 정책도 잇따라 도입됐다. 대표적인 게 지난 2002년 부활한 출자총액제한제도다. 일본은 출총제의 모델이 된 ‘대규모 주식보유한도제’를 시행했지만 지난 2002년 기업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폐지한 바 있다. 기업 투명성 강화 등을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를 도입하면서도 투자 측면에서는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도입해 대기업들은 무장해제시킨 셈이었다. 특히 자본시장을 완전히 개방한 상태에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가능토록 한 게 기업들의 보수적 경영을 부추겼다. 외국자본의 진출이 가속화되고 기관 투자가들이 자본 시장의 권력기관으로 떠오르면서 이른바 ‘펀드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소버린자산운용의 SK 공격, 칼 아이칸 연합의 KT&G 경영권 위협에 이어 최근 ‘장하성 펀드’가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 게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이들은 기업 투명성 제고는 물론 자본시장 확충, 벤처 투자 등으로 금융산업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하지만 지나친 경영 간섭이나 M&A 위협으로 기업들이 단기 실적에 집착하게 하고 경영권 방어를 위한 현금 확보나 자사주 매입에 역량을 소진하면서 성장잠재력을 훼손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영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는 지난 13일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IMF가 주도한 개혁은 세계화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개방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 보완과 사회안전망 구축을 등한시했다”며 “그 결과 한국경제가 외부 환경 변화에 취약해지고 부동산시장의 거품, 양극화, 투자부진, 저성장 등의 문제점을 낳았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의 성과가 더 커= 하지만 이 같은 부작용에도 글로벌 스탠더드는 한국경제를 한단계 질적으로 업그레이드시켰다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신속한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한국 경제의 위상도 높아졌다. 기업 회계의 투명성과 지배구조가 개선됐고 수익성 및 주주 중심 경영도 어느정도 정착됐다. 금융기관도 관치금융에서 탈피해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췄다. 박재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 및 금융 부문의 의식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며 “우리 같은 소규모 개방 경제로서는 일부 손해는 안고 가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나성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한국적 특성을 가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가령 기업 투명성 제고는 필수적이지만 지배구조 등은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비록 강요된 틀이지만 글로벌 스탠더드는 한국경제의 필수 조건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박영철 교수는 “진척된 세계화를 감안할 때 뒤로 후퇴할 수는 없다”며 “세계화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다면 영ㆍ미형 제도를 근간으로 세계화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혼합식 모형이 우리나라가 선택할 수 있는 운명의 틀”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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