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금융당국이 갑작스러운 통화가치 급락에 일제히 시장 개입을 단행하고 나섰다. 아르헨티나가 자국민의 달러화 매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으며 브라질은 "아르헨티나발 외환시장 혼란 가능성은 적다"며 구두개입에 나섰다.
터키는 외환시장에 30억달러를 푼 데 이어 "상황이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시장 진정시키기에 나서는 등 사용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신흥국 중 가장 유망한 축에 속하는 멕시코도 올 들어 환 가치가 하락하자 구두개입으로 선제 대응에 나섰다.
25일(현지시간) 로이터에 따르면 전날 아르헨티나 호르헤 카피타니치 대통령실장은 짤막한 성명을 통해 "27일부터 예금 및 여행 목적의 달러 매입을 허용하는 한편 환전 수수료도 낮출 것"이라고 밝혔다.
아르헨티나는 그동안 달러화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국민의 달러 취득을 엄격히 관리·감독해왔으나 이런 규제가 오히려 외환시장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비난에 시달리자 이 같은 조치를 내놓았다.
인접국 브라질도 위기 차단에 나섰다.
중앙은행의 페르난도 호샤 경제국장은 지난 24일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면서 "아르헨티나 외환시장의 혼란이 브라질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호샤 국장은 브라질이 순채권국이며 외화보유액은 3,750억 달러를 넘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터키는 앞서 23일 리라화 가치가 급락하자 30억달러 규모의 달러화를 시장에 풀었다.
그러나 직접 개입에도 혼란이 가라앉지 않자 24일 구두개입까지 동원했다.
부총리인 알리 바바칸은 이날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정부와 은행·가계 재정상황이 양호하며 금융당국은 풍부한 재원을 동원해 시장 변동성에 적절한 대응을 하고 있다"며 "현재의 혼란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과 국내 정정 불안으로 인한 가격 재조정 과정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멕시코 재무장관인 루이스 비데가레이 역시 24일 로이터TV에 출연해 "멕시코 역시 신흥국인 만큼 현재의 변동 장세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서 "당국은 현재의 혼란에 잘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이후 테이퍼링 공포에도 비교적 선방하던 멕시코 페소화가치가 올해 들어서만 3.1% 하락하자 당국이 선제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브릭스 경제 수뇌부들도 23일 다보스포럼에서 테이퍼링에 따른 신흥국 금융 불안에 대해 일제히 우려를 표명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다만 신흥국의 잇따른 시장개입에도 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국민의 달러 매입 규제를 풀었지만 지난 3년 동안 실시된 기업의 수입 규제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등 개혁책이 시장의 불안을 달래기에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브라질 역시 지난해 전체 수출에서 아르헨티나가 차지하는 비중이 중국(19%)과 미국(10%)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8%여서 파장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파이낸셜타임스(FT)는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닐 셔링 신흥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를 인용해 신흥국을 위기 취약 정도에 따라 5개 그룹으로 나누는 분석을 내놓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분석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우크라이나·베네수엘라는 가장 위기에 취약한 국가로 꼽혔으며 그 다음으로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인도네시아·태국·칠레·페루 등이 지목됐다.
세 번째 취약 그룹은 헝가리·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이며 상대적으로 덜 취약한 네 번째 그룹에는 브라질·인도·러시아·중국 등 일명 브릭스 국가들이 명단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가장 취약하지 않은 다섯 번째 그룹에는 한국과 필리핀·멕시코 등이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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