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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중앙은행] 고비마다 금리 결정 실기… 신뢰 추락 자초한 한은

박승·이성태 총재 등 금리정책 시장과 엇박자<br>김중수 총재도 모호한 발언·불통으로 일관<br>올 초 인하 요구에도 경기회복 이유로 동결<br>코너에 몰린 김총재 11일 금통위 결정 주목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3월 기준금리 동결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통화정책 운영 방향을 발표한 뒤 무표정한 표정으로 자리를 나서고 있다. /서울경제DB



우리나라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1997년 한국은행법 전면 개정이 추진되면서부터다. 당시 강경식 경제부총리는 취임 일성으로 "한은법과 노동법을 고치겠다"고 선언한 뒤 한은에서 은행감독권을 분리하고 재정경제원 장관이 쥐고 있던 금융통화위원회 의장 자리를 한은 총재에게 넘겼다.

당시 기획부장이었던 이성태 전 한은 총재를 비롯한 한은맨들은 거리에 나서 법 개정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은행감독원을 분리해서는 안 된다는 요지였다. 이른바 '한은법 파동'이다. 결국 개정법은 이듬해 4월부터 시행됐고 이경식 한은 총재는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불명예 퇴진했다.

이후 고 전철환 총재, 박승 총재, 이성태 총재 등 3명의 한은 총재가 4년 임기를 채웠다. 역설적이게도 한은 총재의 임기만은 확실히 보장된 것이다.

하지만 총재 임기와 별개로 한은의 독립성은 매번 도마 위에 올랐다. 한은이 15년 전 쟁취했던 것은 '독립'이 아닌 '고립'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물론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시장과 정부의 압박이 들어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역대 정부 때마다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옛 재정경제부)는 금통위가 열리기 직전 우회적으로 '간섭'을 하곤 했다. 이헌재 경제부총리 시절에는 여러 차례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한은이 들고 일어나면 이내 꼬리를 내렸다. 겉으로나마 '한은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물러섰다.

그렇다면 외부의 금리 간섭이 과도한 것이었을까. 불행하게도 시장은 한은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한은 스스로 시장의 신뢰를 잃어왔기 때문이다. 한은 총재는 걸핏하면 시장의 기대와 따로 노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고 금리 결정은 고비 때마다 실기를 되풀이했다.

박승 전 총재의 경우 시장과의 대화를 중시하는 총재였지만 시장 기대와 반대로 말하거나 절제되지 않게 표현을 할 때면 '오럴 리스크'가 따라다닌다는 비판을 받았다.

금리 결정의 실수는 한은 스스로도 너무 뼈아팠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리던 이성태 전 총재는 리먼브러더스 파산 한달 전인 2008년 8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 '한달 앞도 못 내다본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그해 10월 결국 긴급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낮추는 결정을 내렸지만 잃어버린 신뢰를 만회하기는 늦었다.

이런 상황은 김중수 총재 체제에서 더욱 심해졌다.



김 총재는 취임 전 "한은도 정부"라는 말로 논란을 빚었다. '본인의 색깔'이라 할 수 있지만 한은의 독립성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2010년 11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9ㆍ10월에 금리를 동결했다가 11월에 가서야 금리를 올렸을 때가 단적인 예다. 당시 7월에 이어 9월에 '징검다리'식 인상을 기대했던 시장은 G20 일정에 끌려다니는 중앙은행을 비판했다. 한은의 기준금리 결정이 철저하게 '정치적 논리'에 좌지우지된 것이다.

올해 초부터는 선제적 금리인하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김 총재는 '미약한 경기회복세'를 근거로 금리를 5개월째 동결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7개월 연속 0%대를 보이는 상황에서 중앙은행 총재의 경기인식이 안이하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시장에서는 아무리 늦어도 지난해 말이나 올 1월에는 금리를 내렸어야 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실기가 김 총재 스스로를 외통수로 몰아넣은 셈이다.

시장과의 소통방식도 문제가 됐다. 기준금리 방향을 예측하지 못하게 만드는 모호한 발언들이 이어지면서 시장은 김 총재에게 '불통 중수'라는 별명을 붙였다. 김 총재는 시장을 믿지 않고 시장은 김 총재를 믿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박근혜 정부 들어 한은의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여당과 재정부에 이어 청와대까지 대놓고 금리인하 압박에 나서는 초유의 상황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11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가 또다시 동결될 경우 김 총재는 '불통 중수'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고 인하할 경우 한은은 김 총재 재임기간 내내 시장의 신뢰를 송두리째 잃게 되는 답답한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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