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윌리는 자동차를 판매하는 세일즈맨이다. 자상한 아내와 두 아들을 두고 있는 윌리는 지금은 월세방에 사는 가난한 신세지만 열심히 일하면 밝은 내일을 꿈꿀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평생 동안 회사 제품을 판매하며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쫓겨나고 가계 빚은 불어나기만 한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밝은 출구가 나와야 하지만 달릴수록 더욱 어두워진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품었던 꿈과 희망은 시들어버리고 만다. 윌리는 월세를 낼 수 없는 신세로 전락하자 자신의 목숨을 끊고 부조리한 이 세상과 작별한다. 사망 보험금을 가족들에게 남긴 채.
20세기 자본주의의 추악하고 왜곡된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가 쓴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줄거리다. 세일즈맨으로 표현되는 윌리는 소시민,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한국 사회도 수많은 윌리를 양산했으며 지금도 잉태하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고의 이익을 낸 대기업의 그늘에서 과실을 공유하지 못하고 문을 닫는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이 윌리다. 고용 없는 성장의 희생물이 돼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백수 청년들, 한창 일할 나이에 명예퇴직을 강요당한 중년의 직장인들, 자녀들 학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전선으로 내몰리는 가정주부들, 이들도 윌리다. 한국 사회에 윌리가 세포분열을 하며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저수지(자본주의)를 가두는 댐(시스템)에 작은 구멍이 생기면 댐은 스스로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무너지고 만다.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기업은 혼자서 높이 나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 골목 상권과 함께 멀리 가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면 대기업도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고 만다는 진실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정부는 복지 시스템을 정교하게 정비해야 한다. 일할 의욕과 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일과 복지를 연계시키는 '생산적 복지'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압축성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계층에게 따뜻한 눈길을 돌려야 할 때다. 지금 나서지 않는다면 한국은 '윌리 사회'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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