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약세로 이머징마켓 통화당국이 연일 시장개입에 나서 달러약세 저지에 나서는 것과 달리 '강달러' 지지 발언을 쏟아내던 미국과 유럽ㆍ일본 등 이른바 'G3'는 약 달러를 방관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금리를 결정한 8일(현지시간) 시장은 장 크로드 트리셰 총재의 환율 발언에 촉각이 쏠렸다. 트리셰 총재는 예상대로 1%인 기준 금리를 동결하고 "미국이 강 달러를 유지하려는 정책은 매우 중요하다"며 강 달러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재천명했다. 구두 개입으로도 볼 수 있는 이 발언에 유로화가 하락(달러강세) 하기는 커녕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강경 발언을 기대했다 실망한 시장은 달러를 내다팔아 유로화 가치를 유로당 1.4802달러까지 끌어올렸다. 이날 뉴욕 외환시장에서 주요 6개국 통화대비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전날 보다 1% 떨어진 175.76을 기록, 지난해 8월 이후 최저치로 밀렸다. 유니크레딧의 마르코 애넌지아타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트리셰 총재가 유로화 상승을 제한하려는 신호를 보냈지만 시장은 이를 '속임수'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의 강 달러 지지 발언은 어디까지나 '립서비스'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선진국의 달러 약세 방관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단 이머징마켓에 비해 선진국 외환시장 규모가 커 시장 개입의 실질적인 효과가 낮다는 것을 들수 있다. 또 자국 통화가치 상승이 가파르긴 하나, 아직까지는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분석도 있다. 유로화는 지난 3월 이후 달러 대비 15%로 급등했으나 연초 대비 상승폭은 7%에 그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로와 엔 등 선진국 통화의 달러 대비 절하 폭은 이머징 통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진국의 약 달러 용인 이면에는 출구 전략의 공조를 압박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수출주도형 경제구조인 이머징마켓 입장에서 금리 인상은 자국 통화 강세로 인해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지금과 같은 약 달러 기조라면 금리를 인상할 여지는 더욱 좁아진다. 경기 회복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딘 선진국들은 이머징 마켓의 조기 출구전략 시행이 세계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호주의 지난 5일 금리 인상은 이머징마켓의 출구전략시행에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과 유럽, 일본은 내년 하반기 또는 2011년 가서야 출구 전략을 가동할 태세다. 미국이 약 달러를 방관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이 G20을 통해 관철시킨 '글로벌 불균형 해소'의 핵심은 선진국과 이머징마켓간의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에 있다. 약 달러 방관 없이는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다. 유럽 역시 이머징마켓, 특히 중국 위안화 절상에는 미국과 한 목소리다. 이미 생명이 다한 G7에서도 위안화의 절상을 촉구한 바 있다. 선진국 내수 시장 활성화를 겨냥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이 대표적인 사례다. 엔고는 수입물가를 떨어뜨려 내수를 촉진하는 효과를 낳는다. 게다가 친 기업 성향의 자민당 정권과는 달리 새로 들어선 민주당 정권은 민생에 치중하고 있다. 수출간판 기업 소니가 엔고로 신음소리를 내지만 엔고는 일반 서민들의 실질 구매력을 높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리셰 총재가 미국과 EU간 환율정책 공조를 촉구하고 있지만 미 당국은 달러가치가 위기 이전인 2년 전과 비슷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미국이 시장 개입에 나설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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