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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집권 이후 34일이라는 최장기간의 잠행을 이어가면서 북한의 정세에 이상이 생겼다는 관측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지난 4일 남한을 전격 방문해 김 제1위원장의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의문은 가시지 않고 있다. 김정은은 6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국방위원회가 인천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던 선수단을 위해 평양 목란관에서 개최한 연회에 불참했으며 전날 오후 남한을 방문했던 북측 고위급 대표단과 아시안게임 선수단이 귀국하는 자리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 및 선수단 격려를 위해 고위급 인사를 파견할 정도로 관심을 보였던 김정은이 선수단 귀국 및 환영 연회에 불참한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북한 경비정의 7일 오전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은 뜻밖이다. 워낙 예측이 불가능한 북한이지만 고위권력자들의 인천 방문 불과 이틀 뒤에 나온 돌발행동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군도 이번 사건에 대한 과도한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북한 내 권력 2·3·4위인 고위급 인사들이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명분 삼아 한꺼번에 인천을 깜짝 방문함으로써 조성된 남북대화 분위기를 이어가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물론 겉으로 나타난 이번 교전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남북 함정끼리 교전은 2009년 대청해전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북한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NLL 무력화를 시도해왔고 이번 사건도 그 연장선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이 우리 해군의 경고통신이나 경고사격을 받으면 북상하던 통례와 달리 바로 대응사격을 가해왔다는 점에서 고의적인 도발 의도가 깔렸다는 해석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 군은 뚜렷한 도발은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교전이 일어난 현장 부근에 북한의 어선단이 몰려 있었다는 점은 어선을 관리·지도하는 과정에서 일시적 침범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남북 함정 간 전력 차이를 잘 알고 있는 북한이 도발하려고 마음 먹었다면 경비정을 내려보내면서 다른 준비 태세를 갖췄어야 하는데 해안포나 미사일 등의 이상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 해군도 대응 매뉴얼에 따르되 극히 조심스럽게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윤영하급 유도탄 고속함에 탑재된 76㎜ 함포나 40㎜ 노봉 기관포는 레이더와 연동되는 사격통제장치로 흔들리는 해상 조건에서도 정확한 사격이 가능하지만 경고(5발) 및 대응사격(90여발)은 경고용으로 일관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방부 국정감사에 앞서 '경고 사격이냐, 상호 교전이냐'는 질의에 "남북 간에 상호 교전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답변했지만 현장 상황과 합참 판단은 다르다. 현장 상황은 이렇다. 유도탄 고속함 1척과 참수리급 고속정 2척 등 3척의 우리 해군 함정과 북한 경비정 간 거리는 약 8.8㎞. 우리 해군은 북 경비정을 향해 위협사격을 가했고 포탄은 북 경비정 부근에 이르렀다. 반면 북한의 대응사격은 우리 함정 앞 수㎞ 앞 바다에 떨어졌다. 북한 경비정 기관포의 사정거리가 극히 짧은 탓이다. 정리하면 서로 멀리 떨어져 우리 해군은 근거리 위협사격을 가했고 북한 경비정은 바다에 대고 쐈다는 얘기다.
합참 관계자는 "조심스럽지만 북한 수뇌부의 대화 의지가 일선 부대까지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며 "넓은 의미에서 교전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군사적으로는 살상을 목적으로 사격한 것이 아니라서 교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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