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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사라진 세상 정말 행복할까요

■죽음의 중지<br>■주제 사라마구 지음, 해냄출판사 펴냄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책은 느닷없이 이렇게 시작한다. 그 나라에서 '죽음'은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포르투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2005년작 소설 '죽음의 중지'는 새해 첫날부터 갑자기 죽음이 없어진 한 나라의 이야기다. 치명적인 사고를 당한 사람도, 불치병에 걸려 살 날을 꼽고 있던 이들도 그 상태로 멈췄기에 죽지않게 됐다. 전대미문의 사실로 국민들은 기뻐했고 집집마다 국기를 내다 걸며 축복에 감사했다. 하지만 환호는 길게 가지 못했다. 죽음 없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불로(不老) 불사(不死)의 흡혈귀가 우울한 분위기 속에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흡혈귀는 개인과 소수의 고통이지만 이 책은 그 같은 상황이 사회적으로 확대된 형태다. 차라리 죽게 해 달라며 질병의 고통과 싸우는 환자에겐 통증을 멈추게 할 유일한 지향점이 죽음이다.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도 똑같이 괴롭다. 또 죽음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당장 장례업체는 일거리가 없다. 종교인들은 영생의 삶이 곧 종교의 종말이라며 불안해 하고 양로원은 넘쳐 난다. 여기다 연금 수급의 문제까지 발생해 사회는 급격한 혼란에 빠져든다. 사람들이 죽음을 갈구할 지경에 이를 만큼. 단 한명의 여자를 제외하고 모두가 실명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가의 전작 '눈 먼 자들의 도시'가 보이지 않는 척 눈 감아온 추악한 인간 본성을 파헤쳤고, 그 반대인 '눈 뜬 자들의 도시'는 두 눈 부릅뜬 시민들이 나서 권력의 우매함을 질타했다. 이번에는 죽음의 부재를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음미하게 한다. 작가는 비현실적인 극한 상황만을 설정하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놀랍도록 현실적이며 그 깊이감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다. 여든 일곱의 노장은 마치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보여줘야만 깨닫겠느냐'라며 돌아앉아 나무랄 것만 같다. 사라마구의 책이 늘 그러하듯 쉼표와 마침표 외에는 별도의 문장부호가 쓰이지 않았다. 따옴표와 물음표도 없이, 게다가 다소 긴 문장이 난해하다 싶을 수 있지만 그의 방식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런 막막함이 반가울 듯하다. 300쪽 미만의 길지 않은 분량인 데다 상황이 긴박하게 전개돼 책장은 막힘 없이 술술 넘어간다. 마지막 문장 '다음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가 가장 큰 반전이다. 첫 문장과 같지만 이는 전혀 다른 의미다. 죽음 자체가 죽이는 것과 인류 스스로가 자행하는 죽음에 대한 반성, 그것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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