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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년퇴직 앞둔 김영성 관훈클럽 사무국장

"42년간 언론단체 살림꾼 노릇 지나온 일 차분히 정리해봤으면…"

김영성(66) 관훈클럽 사무국장

“언론의 역사나 언론인의 뒷얘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지요. 그동안 보고 듣고 느낀 일들을 거창하게 책으로 쓰겠다는 욕심은 없고 평소 회의록이나 관련 자료를 정리하던 기분으로 지나온 일들을 기록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40여년 동안 언론인 단체의 살림꾼 노릇을 맡아온 김영성(66) 관훈클럽 사무국장이 이달 말로 정년퇴직한다. 지난 64년 한국기자협회 창립과 함께 사무국 직원으로 시작해 사무국장을 끝으로 21년 동안 봉직한 뒤 85년 관훈클럽으로 자리를 옮겨 관훈클럽 신영연구기금 사무국장을 겸직하며 21년을 또 보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언론인 모임과 역사를 함께해온 그가 언론인단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동아일보 기자이던 친형이 기자협회창립 멤버였기 때문. 군에서 제대하고 마땅한 직장도 없는 터에 “좋은 단체가 있다”며 일해볼 것을 권유해 기자협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뇌리에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기자협회가 독재정권에 고초를 겪었을 때. 71년 기자협회가 언론자유수호 행동강령을 제정했다가 손주환 회장 등이 사임했던 일, 75년 동아ㆍ조선의 자유언론수호투쟁 때 기자협회보가 폐간됐던 일, 80년 계엄사 검열 철폐 운동을 하다가 김태홍 회장을 비롯한 회장단 대부분이 구속되고 1,000명 가까운 회원들이 해직됐던 일 등이 떠오른다고 술회한다. 85년에는 직장을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으로 옮겼다. 기자협회보 편집실장과 관훈클럽 사무국장을 지낸 정진석 한국외대 교수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며 그를 추천한 것. “관훈클럽 멤버들이 언론사 고위간부여서 기자협회 때보다 허물없이 지내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배우는 것은 더 많았습니다. 언론자유운동은 일선 기자들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 분들이 더 깊이 고민하더군요." 40여년을 언론인 단체에서 일하며 집도 36년째 기자촌을 벗어나지 않던 그가 직장을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퇴직 사유는 정년이지만 관훈클럽 규정에는 “사무국장의 임기는 이사회가 정한다”고 명시돼 있어 얼마든지 더 근무할 수 있었고 임원들도 한사코 말렸다고 한다. “예순을 넘기면서부터 여러 차례 퇴직하겠다고 얘기했는데 계속 거절당했지요. 건강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좀 쉬고 싶기도 했고 너무 오래 있으면 조직에 누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요. 만 65세가 되던 지난해 연말 ‘대학교수도 65세면 정년인데 이번에는 정말 그만두게 해달라’고 간청해 허락을 얻었습니다.” 김 국장은 1남2녀에 손녀까지 둔 할아버지. 부인은 4년 전 췌장암으로 떠나보냈다. 퇴직 후 구체적인 계획은 쉬면서 천천히 생각해볼 예정이나 지금 머릿속에는 서울 변두리에 조그마한 텃밭을 가꾸며 채소나 과수 등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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