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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수지 만성 적자… 글로벌 인재 키우고 세 지원을

[한국 로펌, 국경을 넘어라] <상> '법률서비스는 내수용' 오명 씻자

기업들 해외로펌 선호 관행에 영세한 국내 로펌 전문성 부족

지난해 7,000억 넘는 적자 기록

국제적 역량 변호사 양성하고 해외진출보험제도 도입 등 정부 보험·세제혜택 제공 필요


국내 5대 법무법인(로펌)으로 꼽히는 A법인은 국내 로펌이 진입할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졌던 미국과의 무역 분쟁 분야에 뛰어들어 잇따라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이 로펌에 사건을 의뢰한 주체는 지금까지 한 건을 제외하면 모두 한국 정부다. 무역 분쟁에서 미국 정부와 싸워야 하는 국내 주체는 정부와 기업이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국내 로펌에 사건을 의뢰하지 않는다. A법인의 한 변호사는 "정부에서 우리 로펌을 추천하더라도 국내 기업은 오히려 '해외 분쟁에 국내 로펌을 추천한다'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다"며 "해외 자문이나 분쟁에 국내 로펌을 소개받았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내외 기업을 대리해 국제적으로 활동하기는 아직 어렵다는 현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국내 로펌들에게 해외 시장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한국 경제는 이미 자동차, 반도체 등 제조업은 물론 케이팝(K-POP) 같은 콘텐츠산업 분야도 세계를 무대로 뛰고 있지만 법률 산업만은 여전히 내수용에 그치고 있다. 기업들의 뿌리 깊은 해외 로펌 선호 현상과 국내 로펌의 경쟁력 부족, 미진한 정책적 지원 등이 뒤섞여 한국 법률서비스 산업은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라는 오명을 입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는 2017년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글로벌 로펌의 공세가 강화돼 법률무역 수지 적자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럴 경우 국내 기업이 해외 로펌에 높은 수임료를 지급해야 하는 것은 물론 기업의 민감한 부분을 해외 로펌에 공개해야 하는 상황이 확대되면서 법률수지 적자는 물론 국내 산업계의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에따라 국가 산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차원에서도 법률서비스 무역역조 개선이 시급하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20일 정부 통계(KOSIS)에 따르면 한국 법률서비스 수출입 수지는 올 들어 5월까지 2억2,240만 달러(약 2,567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상반기에만 3,000억 원 가량의 무역 적자가 발생할 전망이다. 법률서비스 적자 규모는 2010년 4억7,340만 달러(5,426억 원) 수준에서 2013년 7억2,190만 달러(8,274억 원)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적자규모가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연간 6억1,780억 달러(7,080억 원) 수준의 적자를 냈다.

여기에는 국내 기업들의 외국 로펌 선호 관행과 한국 로펌의 영세성, 전문성 부족 등의 원인이 뒤섞여 있다는 게 법조계와 학계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활동할 때 인지도가 높은 외국 로펌을 선호하는 이유를 법률 서비스의 기본 성격에서 찾는다. 법률서비스는 기본적으로 승소를 목표로 한다. 패소하면 막대한 손해로 연결되기 때문에 현지에서 인정받는 로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기업의 인식 부족이나 관행적으로 외국 로펌을 선임하는 업무 행태가 무역적자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김홍석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할 때 국내 로펌이 충분히 주도할 수 있는 사건도 외국 로펌에 의뢰하거나 외국 로펌의 보조적 업무로 국내 로펌의 위치를 제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런 구조는 막대한 법률비용 지출과 무역수지 적자, 국내 로펌의 경쟁력 강화 기회 박탈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은 해외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필요한 법률 검토는 국제 계약법적 요소가 80%이고 현지 요소는 20% 정도에 불과하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한국 기업문화를 이해하는 국내 변호사들이 프로그램을 관리하고 주도하면 업무 효율성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국내 로펌부터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비록 김앤장을 비롯해 광장, 세종, 태평양, 화우 등 국내 10위권 로펌은 일부 분야에서 세계 선두권의 역량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 로펌 전체를 봤을 때 세계 시장에서 통합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곳은 10곳 수준이라는 게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이다.

국내 5대 로펌에 근무하는 한 변호사는 "국내 로펌의 해외 현지사무소 중 처음부터 끝까지 현지업무를 맡아 처리할 수 있는 곳은 없다고 봐야한다"며 "대형 로펌의 해외사무소 조차 사실상 현지 로펌을 찾아 연결해주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대형 로펌의 고위 관계자는 "국내 로펌이 온전히 해외에서 일을 맡아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는 1차적으로 영어가 제대로 안돼서 커뮤니케이션부터 어렵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전문가들은 기업과 로펌의 인식전환과 함께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해외에서 활동할 수 있는 법조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제도를 수립하는 한편 중소형 로펌도 세계 각국에 진출해 실전 역량을 쌓을 수 있도록 세제혜택과 보험제도 등을 통해 위험 분산(risk management)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남석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로펌들이 위험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해외진출 보험 제도를 시행하고 해외 현지 법률사무소 신설을 촉진하기 위해 해외투자손실 준비금 제도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해외에서 한국 기업이 한국 로펌과 거래하면 양측 모두에게 외국 납부 세액 공제 한도를 높여 법인세 감면 혜택을 제공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최 연구위원은 "로펌이 경영전략을 강화하고 정부가 제도를 개선하면 2020년까지 국내 법률서비스 산업의 수출은 3조4,000억 원 가량 늘고 이에 따른 부가가치가 3조 2,000억 원, 일자리 창출 효과는 4만 3,000개에 이를 수 있다"며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로펌의 해외진출과 국제적 역량을 갖춘 변호사 양성을 추진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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