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1년 9월22일. 이리철도의 총감독관 찰스 마이넛(Charles Minot)의 몸이 달았다. 급한 용무로 새벽열차를 타고 서부로 향하던 중 열차가 멈췄기 때문이다. 맞은편에서 단선철로를 타고 오는 열차가 역에 정시 도착하지 않으면 1시간을 기다리는 게 규칙이었기 때문. 상대편 열차가 끝내 안 보이면 빨간 깃발이나 등불을 든 기관사 조수가 걸어나간 뒤 20분 지나 열차를 느린 속도로 출발시키는 게 통례였다. 충돌 사고를 피하기 위해서다. 대기하던 마이넛은 동부행 열차가 1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자 다음 역에 전보를 쳤다. ‘통과했는가?’ ‘아직’이라는 답을 들은 마이넛이 ‘동부행 열차가 도착하면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잡아두라’는 지시를 내리고 서부행 열차를 출발시키려는 순간 기관사가 완강하게 버텼다. 총감독관의 설득과 강압에도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던 기관사 대신 운행권을 잡은 마이넛은 열차를 출발시켰다. 기관사는 열차 맨 뒤쪽으로 꽁무니를 뺐다. 마이넛이 무사히 다음 역에 도착했을 때도 동부행 열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똑같은 전신교환이 되풀이되고 열차가 바로 출발한 끝에 마이넛은 네번째 역에서 동부행 열차를 만났다. 운행시간 2시간 단축은 덤. 사상 최초의 교통과 통신의 결합이 이렇게 이뤄졌다. 최초의 전신이 볼티모어~오히이오 간 철로를 따라 가설된 지 8년 만에 찾아낸 19세기판 디지털 컨버전스(convergence)는 세상을 바꿨다. 철도 물동량이 뛰고 수익성 높아진 것은 물론, 융합이 가져오는 혜택에 사고방식까지 트였다.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한 원동력을 철도를 따라 부설된 전신의 효과적 이용 덕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종간 결합은 오늘날 더욱 중요한 화두다. 융합 속에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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