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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7> 개헌 논의, 피할 수 없다면 ‘중심에 서라’


“개헌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시점이 언제가 적절한가, 어떤 형태로 할 것인가를 국민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의 일방적인 판짜기를 위해 개헌 논의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언제 누가 한 이야기일까요? 1997년 당시 킹 메이커로 불렸던 故 김윤환 전 신한국당 고문이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대선을 앞두고 있던 정치권에 화두를 던진 것입니다. 김 고문은 이회창 후보를 무대 위에 세운 사람입니다. 다른 한 편에는 DJP 연합으로 대표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 있었죠. 내각제 개헌은 DJ와 JP의 맹약 조건이자 결별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김 고문은 문제가 불거지기 전부터 앞으로 닥칠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큼 과거의 개헌 논의는 출발부터 불안했음을 감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매 정권마다 되풀이 될 정도로 ‘개헌’은 중요한 화두이지만 역설적으로 논의가 잦아질수록 체감 중요도와 실현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이 행위의 의도와 진정성을 의심한다는 것입니다. 개헌의 최대 수혜자는 차기 대권주자도, 잠재적인 실세도 아닌 국회의원들 자신에 있다는 조소 어린 시선도 있습니다. 개헌을 하면 다수당의 총재가 내각을 꾸리게 될 테니 총선에서 최다득표를 하기 위한 전략을 짜면 되기 때문입니다. 총선은 지역 단위의 성과를 합계한 결과로 의회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지역 민심은 경로의존성이 강하기 때문에 당선 방향의 예측이 쉬운 편입니다. 따라서 내각제나 이원집정제의 실권자인 총리는 이런 의원들 사이의 ‘동료 중 상석’ 역할을 하면서 최대 파벌의 수장으로서 이해관계를 잘 중재하면 얻을 수 있는 자리에 가깝습니다.

반면 대통령 선거는 늘 방향을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설문조사와 데이터 분석 기법을 적용해 봐도 마지막 투표함까지 열어봐야 향배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국민들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인물을 국가 원수로 선출하는 쾌감을 누렸습니다. 대선은 민주화 이후 우리 국민이 5년마다 누려 온 축제라는 상징적 의미 역시 크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정치권의 논의에는 이런 구조적인 통찰이 부족해 보입니다. 더욱 아쉬운 점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 문제에서 한발 비켜서 있다는 점입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개헌 논의가) 경제 블랙홀을 유발할 수 있다”며 부정적 시선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박 대통령의 강한 부정은 다른 이들에게는 긍정적 신호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차기 대권 주자로 지목되는 인물들이나 당의 원내대표들이 한 두 마디씩 거들며 추임새를 넣고, 주요 언론이 호응하는 사이에 개헌 논의는 매우 커져 버린 것입니다.

어느새 대통령의 역할은 경제 또는 외교와 같은 특정 현안에 집중하면서 정치 현장과는 일정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것으로 굳어진 듯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가원수임과 동시에 ‘행정부 수반’ 입니다. 행정부 업무가 정치권에 의해 어떤 영향도 받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할 사람은 없습니다. 개헌 논의는 이미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사회학 이론에 따르면 정치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관심(attention)을 바탕으로 자원을 동원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개헌 논의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모으고 이를 토대로 이슈의 중심에 선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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