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세계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 직접 시장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제3자들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한 면만 보고 판단하면 다른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 있다. 때문에 일률적인 기준을 가지고 평가를 하고 나눈다는 것은 반시장적이다. 특히 정치적인 이해 관계가 끼어들면 시장이 심각하게 왜곡된다.
대기업 계열 정보기술(IT)서비스업체의 공공사업 참여제한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은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 정부는 올해부터 매출 8,000억원 이상인 기업은 80억원 이하, 8,000억원 미만인 업체는 40억원 이하의 공공정보화 사업에 참여할 수 없게 했다. 한술 더 떠 일부 의원들은 오는 2013년부터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IT서비스사는 금액에 관계없이 국가기관이 발주하는 사업 참여를 막는 내용의 소프트웨어(SW) 산업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8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정부와 의원들의 주장은 국내 SW산업 활성화 및 생태계 정상화다. 중소업계가 대기업의 하도급업체로 전락해 SW산업이 발전할 수 없었다는 논리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생태계가 복원되고 벤처 붐이 조성돼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부와 국회의 반시장적 발상
하지만 이는 시장 상황을 모르는 발상이다.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SW업계에서조차도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라고 비판한다. 국내 시장은 외국계 IT 공룡의 독무대가 되고, 우리 기업들의 해외 진출은 큰 타격을 받는 역효과만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화 사업 특성과 국내시장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이런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IT서비스 분야는 오랫동안 갈고 닦은 풍부한 경험과 우수한 기술력이 필요하다. 주요 공공기관 정보화 업무를 대기업들이 주로 맡고 있는 이유다. 행정 전산화, 교통카드 도입 등 현재 쓰고 있는 공공 SW프로그램은 모두 대기업이 개발한 것이다.
중소SW업체가 대기업 수준을 따라잡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게 사실이다. 사업을 수주하더라도 이를 감당할 만한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의 지난 2010년 SW산업백서에 따르면 중소SW기업 가운데 종업원수 50인 이하가 87%에 달하고, 매출액 100억원이 안 되는 곳이 90%를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이 빠져나가면 국내시장은 IBM, 액션추어 등 외국사 차지가 될 공산이 크다. 취약한 국내 중소기업의 SW 기초체력이 단기간 내 개선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우리 업체들이 공들여 키워 놓은 공공시장을 해외업체에 고스란히 내주는 꼴이 되는 셈이다. 대기업 참여제한의 혜택이 국내 중소기업이 아니라 외국계에만 돌아가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점은 수출에 특히 치명적이라는 것. 높지 않은 수익성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공공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것은 국내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가 해외에서 일감을 따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전자정부 솔루션 수출은 지난해 전년대비 58% 늘어난 2억3,566만달러를 기록해 효자 수출상품이 됐다. 이런 마당에 대기업의 공공사업 참여를 막으면 급속한 수출기반 약화뿐만 아니라 새로운 수출상품 개발이 사실상 힘들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대기업 참여 봉쇄는 수출에 치명적
최근 SW 분야의 패러다임이 건축ㆍ문화ㆍ체육ㆍ환경 등 다른 산업과의 결합으로 바뀌고 있는 현실과도 맞지 않다. 산업 간 융ㆍ복합화가 진행되는 시기에는 정부와 대ㆍ중소기업 간 역할 분담이 더욱 중요해진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협력을 통한 공조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내 SW산업은 절름발이가 되고 수출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장위축으로 인해 오히려 중소업체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이렇듯 대기업의 공공정보화 사업 참여제한은 현실을 모르는 정책이다. 대기업을 배제하는 정책을 밀어붙이기에 앞서 만연한 저가수주, 잦은 설계변경 등의 관행을 없애는 게 우선이다. 중소업계에서는 공공기관부터 제값 주고 소프트웨어를 사는 인식전환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와 산학연이 머리를 맞대고 진정한 '공생발전형 SW생태계 구축전략'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다. 시간을 갖고 다양한 토론과 여론 수렴을 거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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