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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노 재무장관에 이어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까지 달러약세를 인정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달러화 약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며 그에 따라 국가간 환율방어 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되는 한 외국투자가들의 달러매도는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그린스펀 의장의 발언은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통화가치 절상압력의 신호라고 할 수 있다. 또 유럽국가에 대해서도 달러약세를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은 달러가치 급락이 세계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세계경제 성장률을 둔화시킬 수 있는 만큼 미국이 먼저 재정 및 경상적자를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환율을 둘러싼 미국과 다른 국가들간의 마찰과 갈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린스펀 발언은 달러약세 위한 카드=그린스펀 의장은 이날 “외환시장에 대한 개입이 확실한 효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중앙은행의 시장개입 효과는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며 달러약세를 막기 위한 인위적인 시장개입은 없을 것임을 강조했다. 이는 결국 미국정부가 사실상 달러약세를 용인한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상적자는 6,000억달러에 달하고 재정적자는 4,000억달러를 넘었다. 그린스펀의 발언은 국내총생산(GDP)의 10%에 근접하는 쌍둥이적자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미국경제가 더이상 버티기 어려우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달러약세 외에는 뚜렷한 해법이 없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과 이라크전쟁 등으로 미국의 재정지출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은 내부적으로는 쌍둥이적자 해소가 어렵다고 판단,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의 수출경쟁력 잠식을 담보로 한 경상적자 축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은 금리인상을 통해 국제 금융시장에서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달러자산에 대한 수요를 창출한다는 계산도 갖고 있다. 실제 그린스펀 의장은 이날 경상적자에 대한 경고와 함께 세계 금융시장은 미국의 금리인상에 대비하라는 메시지도 함께 전달했다. ◇유럽ㆍ아시아 국가와 마찰 불가피=부시 대통령이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 앞서 20일 ‘강한 달러를 고수할 것’이라고 약속한 것에 대해 국제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그저 선언적인 의미에 그칠 것이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유럽 등은 달러약세로 유럽을 포함한 세계경제 성장세가 둔화되고 금융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는 만큼 미국이 재정적자 해소와 달러가치 안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달러환율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으며 미국의 적극적인 대응방안을 촉구했다. 한스 아이헬 독일 재무장관은 “달러가치 급락으로 세계 통화위기가 고조되고 있고 미국이 재정적자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며 미국의 적극적인 조치를 촉구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도 이날 “달러화 약세현상은 미국 쌍둥이적자의 결과”라며 “미국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서 유럽 국가들에 구조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달러약세 여파로 지난 3ㆍ4분기 독일과 프랑스의 경제성장률이 각각 0.1% 감소하는 등 유럽경제의 성장동력이 확연히 떨어지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달러약세 저지를 위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을 경우 환율전쟁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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