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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가 민주주의·경제발전 토대죠

김인섭 태평양 명예대표변호사<br>반 월가시위 과도한 확산 막은 것도 준법의식<br>사회현안 이해 넓은 법조인 정계진출 바람직<br>소통위해 법조계서 금기시하는 회고록 펴내


"법치주의가 정착되면 사회 각 분야에서 시너지 효과가 납니다. 자본주의를 이끈 주식회사 역시 법치주의가 없었더라면 존립자체가 어려운 것이죠."

세계 최대 부국이자 상상을 초월하는 빈부격차가 존재하는 나라 미국. 빈부 격차가 큰 미국이 체제가 전복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무법인 태평양의 창립자인 김인섭(76ㆍ고등고시 14회ㆍ사진) 명예대표변호사는 부자나 거지 모두 사회 밑 바탕에 깔려있는 법을 지키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금융위기가 발생한 직후 다수의 미국인들은 '월스트리트가 1%의 부유층을 위한 시스템'이라며 강력한 불만을 담은 시위를 벌였지만 사회 저변에 흐르는 법치주의를 부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포퓰리즘 광풍'으로 번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반 세기 만에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우리나라를 이끌어 온 원동력도 바로 법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물론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는 아직 부족한 수준이지만, 전쟁이 끝난 후 실질적인 근대화 작업이 시작되면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법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을 가졌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 발전도 시작될 수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법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토대라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요즘 우리 사회가 법의 중요성을 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서로를 불신하며 권력에 대한 견제가 무딘 사회는 법이라는 뿌리가 썩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러 해 동안 사람들에게 법치주의 철학을 틈나는 대로 전달하고 있는 김 대표변호사에게 '당신은 법으로 먹고 살았으니 법치주의 운운한다'거나 '결국 법 지키라는 것 아니냐'는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올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 같은 부정적인 반응은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일축했다.



그렇다면 법치주의를 생명처럼 여기는 법률가가 사회를 다스리는 정치에 발을 디딘다면 어떨까. 김 대표변호사는 일단 긍정적이라고 봤다. 하지만 그는 법을 소중하게 여기는 법률가는 이상적인 정치인의 필수요건일 뿐, 충분요건은 아니라고 했다. "정치한다고 속물이 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원칙을 지키는, 법률가다운 인격으로 정치를 해야 하죠. 또한 경제와 국방, 국제 정치에도 해박한 지식과 판단력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듯 그는 원로 법률가로서 정치에 입문하는 후배들이 갖춰야 할 덕목을 꼽았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그의 모습은 17년 가까이 법관으로 살아온 일생을 반영하고 있었다. 김 대표변호사는 1962년 고등고시(14회)에 합격하고 이듬해 서울지법 인천지원 판사로 임관했다. 이후에는 서울형사지법과 서울고법,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와 사법연수원 교수 등 엘리트 법관 코스를 밟았다. 그 동안 그는 본인이 '흑백논리라고 말할 정도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에 몰두했다'고 언급할 만큼 원칙을 지키려 애썼다. 법원행정처장의 비위사실을 지적하며 대법원장을 직접 찾아가 "그 사람을 교체하지 않으면 사표를 내겠다"며 투쟁을 벌인 일이나 '삼성 사카린 재판' 주심을 맡아 인맥과 학연을 동원한 기업 측의 회유에 시달리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형을 결정했던 경험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다른 곳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체제 순응적인 법조계에서 분명 '튄다'고 수군댔을 행동이기도 하다.

김 대표변호사가 최근 써낸 회고록 '추풍령에서 태평양까지(나남 출판사)'는 이처럼 '튀는 놈'으로 살아온 그의 지난 삶이 담겼다. 의뢰인의 비밀유지나 사건의 기밀성을 생명처럼 여기는 법조계에서 금기하고 있는 회고록을 냈다는 점도 '튀는'결단임에 틀림없다. 이에 대해 김 대표변호사는 "법조(계) 문화나 전통을 벗어나면 이단 취급을 받지만 그런데도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최소한의 프라이버시와 기밀정보를 제외한 나머지는 사회 소통을 위해 기본적으로 오픈 돼야 하기 때문"이라며 직접 경험한 역사의 장면들을 공유한 국민들이 사법부 혹은 법조계와 소통하기를 바랐다.

회고록에는 김 대표변호사가 판사로 살아온 나날들에 대한 기록도 상당했지만 법복을 벗은 후 우리나라 최초로 토종변호사로서 로펌(1980년, 태평양)을 설립하고 키워온 시간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기록돼있다. 김 대표변호사는 2002년 현역에서 물러났으며 현재는 재단법인 굿소사이어티 이사장을 맡아 사회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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