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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기업인의 약속
입력2005-03-02 17:03:24
수정
2005.03.02 17:03:24
손철 기자 <경제부>
“정말 다른 일정은 없습니다. 믿어주세요.”
한국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한 일본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의 방한에 기자가 ‘뭔가 있지않을까’ 하고 집요하게 국내 홍보담당자에게 일정을 묻자 그가 답답한 듯 내뱉은 말이다. 동양 최대의 섬유기업을 이끌고 있는 이 기업 대표는 실제 30분의 장관 면담만 마치고 곧바로 출국했다.
일국의 장관을 만나는 일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해당 부처의 말 그대로 ‘의례적 인사’를 나누며 차 한잔하는 정도였다. 분ㆍ초 단위로 시간을 나눠 쓸 만큼 바쁜 이 CEO가 단지 ‘인사’를 위해 하루를 쓴 이유는 단 한 가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였다.
그는 지난해 연말 한국에 추가투자를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세제지원 등 도움을 준 정부에 ‘감사를 표시하겠다’며 방한을 약속했다. 그러나 불가피한 국내 사정으로 방한할 수 없게 된 그는 이후에도 계속 짬이 나지 않자 아예 하루를 통째로 비워놓고 30분의 만남을 위해 반나절을 보낸 뒤 쏜살같이 돌아갔다.
이런 뒷얘기를 공무원ㆍ기업인들에게 들려주자 역시 ‘못 믿겠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기자가 입ㆍ출국 항공편 시간까지 확인했다고 하자 그제서야 믿는다. 씁쓸하게도 다음에 나오는 말들이 또 비슷했다.
“확실히 우리와는 달라.” 한국 기업인의 신의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묻어났다. 얼마 전 인터뷰를 약속해놓고 하루 만에 뒤집던 G그룹의 오너가 스쳐가는데 약속을 오너 눈치 보느라 연기하고 감감 무소식이라는 L그룹 H사의 전문경영인 얘기도 들려왔다.
과거 독재정치 시절 정경유착으로 증폭된 국민의 반기업정서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데 대해 많은 기업인이 ‘기업이 바뀐 것을 너무 몰라준다’며 하소연을 늘어놓고는 한다. 실제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기업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기업인의 이 같은 노력이 결실을 맺어 반기업정서 해소에 일조하려면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이 먼저 뿌리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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