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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로 전파하는 풀뿌리 과학문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는 월드컵이 열릴 때면 어김없이 언론에 등장하는 스포츠 전문가가 있다. 축구 물리학자로 불리는 이인호 박사다.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의 나노계측과학 전공 교수이기도 한 이 박사는 과학자로서 축구에는 심오한 과학적 원리가 숨어있다고 강조한다. 축구공의 소재에는 물질의 안정된 구조를 찾는 화학의 원리가, 디자인과 기능에는 심오한 물리학의 원리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 박사의 학문적 토대는 전산물리학이다. 현재 표준연 나노소재평가센터에서 나노 소재의 물리적 특성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밝혀내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런 그가 과학기술계를 대표하는 축구 전문가로 알려진 것은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맞아 물리학회 홍보잡지에 ‘축구와 물리학(Soccer and physics)’이라는 글을 기고한 게 계기가 됐다. 이후부터 월드컵 시즌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축구의 원리를 물리학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물론 이는 단순한 재미나 공명심의 발로 때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축구라는 스포츠를 매개체 삼아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과학적 소양을 높이고, 친근성을 강화하고자 함이었다.

이 박사는 축구가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표준과도 나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축구공과 경기장에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한 규격, 다른 말로 표준이 있으며 경기 규칙도 일종의 표준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이런 표준은 축구경기의 중요한 요소에요. 모든 팀과 선수들이 동일한 조건 하에서 공정하게 경기를 치를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죠.”

실례로 월드컵 공인구에는 재질과 크기, 중량, 공기압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기준이 마련돼 있다. 가죽 또는 FIFA가 승인한 재질을 사용해야 하며, 둘레와 중량은 각각 68~70㎝, 410~450g이어야 한다. 공기압은 해수면 기준 0.6~1.1기압(600~1,100g/㎠)이 규정이다. 이외에도 방수성, 내구성, 탄성, 반발력, 회전력 등 7개 항목을 통과해야 공인구 마크를 달 수 있다.

“공인구 하나에는 약 1,620회의 바느질이 가해집니다. 게다가 외피 조각을 꿰매는 일은 100% 수작업에 의존, 숙련된 기술자라도 8시간 동안 3개 밖에 만들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나의 작품이라 할 수 있어요.”

브라질 월드컵의 공인구인 브라주카의 경우 6장의 폴리우레탄 조각을 꿰매 외피를 형성했고, 우천 시에도 평상시와 거의 동일한 중량과 형태가 유지되도록 접합돼 있다. 또한 공기 주입구를 라텍스로 제작, 불규칙 바운드도 크게 줄였다는 것이 이 박사의 설명이다.

“언젠가 국내 기업이 생산한 공인구가 월드컵 경기에 쓰이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그러려면 표준과학을 비롯한 다양한 과학기술이 발전해야 합니다. 스포츠 강국은 곧 과학기술 강국이라는 말이 전혀 틀리지 않습니다.”



표준의 중요성은 축구 경기장도 다르지 않다. 필드의 크기는 물론 센터서클, 골라인, 페널티 에어리어, 페널티 아크 등의 범위가 정확히 규정돼 있다.

“이 모든 것은 선수들이 경기를 하는 데 있어 최적의 지점을 과학적으로 계산해 반영한 결과물입니다.”

하지만 축구에서 가장 과학적인 요소는 뭐니 뭐니 해도 축구공을 찼을 때 공중에서의 비행 궤적에 있다. 이 박사에 따르면 바나나킥, UFO 슛, 무회전 슛 등 축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킥들에는 하나 같이 물리학적 원리가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가장 많은 선수들이 프리킥 기술로 애용하는 바나나킥을 예로 들어 보죠. 여기에는 ‘마그누스 효과(Magnus effect)’가 작용합니다. 1852년 독일의 물리학자 구스타프 마그누스가 포탄의 탄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물리학 원리인데 회전하는 공과 공기의 마찰에 그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키커가 슈팅을 할 때 공에 회전력을 가하면 한쪽은 공기의 저항을 받아 압력이 높아지고 반대쪽은 상대적으로 압력이 낮아지면서 압력이 낮은 쪽으로 공이 휘게 되는 원리에요.”

이와 관련 공의 속도가 대략 시속 100㎞를 넘어서면 마그누스 효과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때는 공이 휘지 않고 직선으로 날아간다.

“강력한 킥을 자랑하는 톱클래스 선수들은 공의 속도가 시속 100㎞ 밑으로 낮아져서 공이 휘어지는 시점이 약 9.15m에요. 프리킥 상황에서 수비수들이 공에서 9.15m 떨어지도록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선수가 공에 맞아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거리인 셈이에요.”

이 박사는 앞으로 골프공처럼 표면에 딤플이 있는 축구공이 등장할 수도 있다고 예상하기도 했다. 이렇게 표면에 많은 홈을 만들면 공 주변에 난류가 유도되면서 비거리가 늘어나기 때문에 중거리 슛의 파괴력이 커지고, 그만큼 공격적인 축구가 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과학, 특히 물리학이라고 하면 머리부터 절레절레 흔듭니다. 하지만 축구를 가지고 설명하면 어떤 얘기보다 재미있게 듣고는 하죠. 이게 바로 흔히 말하는 ‘풀뿌리 과학문화’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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