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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칼럼/11월 23일] 헌법 재판관과 국회의원

세종시 원안고수냐 수정이냐를 두고 온 나라가 시끄럽다. 문제가 이렇게 불거진 원인은 노무현 정부가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제정해 수도를 이전하려고 했을 때 헌재가 관습헌법에 근거해 위헌판결을 내린 것이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헌재 판결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중앙부처 일부를 이전하는 수도분할로 대응했다. 당시 헌재의 위헌판결 이유를 보면 한양은 조선왕조 개국과 더불어 수도로 정한 이래 600여년 동안 면면히 내려왔기 때문에 비록 성문헌법에 명시가 안 됐어도 관습헌법에 서울이 수도로 돼 있으므로 수도 이전을 위해서는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법률전문가가 아닌 필자의 짧은 생각으로 수도이전은 고도의 정치행위로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결정하거나 국민이 투표를 통해서 직접 결정해야 할 사항이지 재판관들이 결정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특정 사안이 헌재 소관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헌재 자신이고 또 헌재의 결정은 최종결정으로서 확정돼버리기 때문에 결국 수도이전 여부의 결정이 헌재 손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에는 국회에서 미디어법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적법한 토의절차를 생략했기 때문에 미디어법이 무효라는 헌법소원에 대해 절차적으로는 문제가 있으나 미디어법 자체는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헌법소원제도는 법률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공권력의 오ㆍ남용으로부터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으로 제6공화국에서 채택된 것이다. 이를 근거로 야당의원들은 여당의 날치기 통과 때문에 자신들의 법안심의권이 침해됐다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던 것이다. 국민이 보기에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국가 기관인데 다른 국가 기관으로부터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헌법소원을 내는 것이 결코 자랑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또 절차적 문제가 있음이 명백해졌는데도 법률 자체는 유효하다는 판결에만 매달리는 쪽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국민이 국회의원을 뽑고 세비를 주는 것은 수도 이전이나 미디어법과 같이 막중한 국사를 처리할 때 충분히 여론을 수렴하고 깊이 논의해서 타협안을 만들고 표결에 부쳐 결정하라는 묵시적인 명령인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도 못하고 국민이 뽑지도 않은 헌법재판관들에게 의지하는 것은 심각한 직무유기가 아닌가 한다. 헌법재판은 원래 헌법이 가진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라고 생각한다. 행정부 또는 입법부에서 제정하는 법률들이 헌법에 규정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를 지켜내도록 하는 사법부의 견제장치인 것이다. 국가권력 앞에서 약자인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는데도 다른 방법으로 구제받을 수 없을 때 마지막으로 나서서 구제해주는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의 판결은 구체적인 시대상황에서 헌법적 가치가 무엇인가를 규정함으로써 헌법을 살아있는 법으로 현실화한다. 헌법은 보통 추상성이 높고 빈번히 개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시대흐름을 좇아가면서 때로는 시대흐름을 인도하기도 한다. 지난 1930년대 대공황 때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량 도산하는 기업들을 보호하고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담합을 허용하는 산업부흥법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위헌판결을 받았다. 이는 당시 미증유의 위기상황에서도 시장경쟁의 본질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헌법가치를 구현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헌법재판도 정권 성향에 흔들리지 않고 오늘의 시대상황에 맞는 헌법가치를 구현하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면서 미디어법 사태와 같이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사안은 국회의 자정기능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 또 정치인들도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헌재에 미루는 의타심은 버리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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