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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오션에 빠진 금융권] <1> 경제회복에 발목
입력2005-06-12 19:25:16
수정
2005.06.12 19:25:16
은행부터 보험·자산운용·증권사까지 과당경쟁<br>부동산 과열등 시장왜곡 불러<br>은행, 내수영업 치중 출혈도 마다안해
금융권의 과당경쟁이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가 대규모 부동산억제정책을 쓰고 있는데도 은행들이 올들어 주택시장에서 대출경쟁을 벌이면서 흘러나간 방대한 자금이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이후 과열된 적립식 펀드 판매 경쟁은 주가상승의 원동력이 됐지만 경제 기초여건(펀더멘털)이 개선되지 않는 한 2~3년 내에 새로운 불안요인이 된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과열경쟁은 은행권에서 시작, 최근엔 보험ㆍ자산운용에까지 확대되고 심지어는 공동 몰락의 위기를 겪은 카드업계서도 또다시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본지는 금융권의 이런 경쟁이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을 초래할 것으로 보고 시리즈로 게재한다.
지난 90년대 중분 이후 10년 동안 한국의 경기사이클은 제조업의 시설과잉보다는 금융 부문의 붐-버스트에 의해 좌우돼왔다. 97년 외환위기는 은행들이 저리의 해외자금을 대규모로 끌어오다가 발생했고 98년 위기는 은행의 과다한 기업대출이 연쇄부도를 맞으며 터졌다.
2003년 신용카드 위기, 2004년 중소기업 금융난도 은행들이 대기업에 여신을 줄이고 개인과 중소기업에 지나치게 돈을 빌려주고 회수하는 과정에 파생했다. 지금 한국경제는 또다시 금융권 과당경쟁에 의해 부동산 경기와 펀드 과열에 의한 불안에 노출돼 있다.
금융권의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견제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이 금융권이 레드오션에서 벗어나 블루오션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주문하며 은행ㆍ보험ㆍ증권 등 각 권역에서 ‘무모한 경쟁’을 거둬줄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박승 한은 총재도 최근 금통위에서 금리를 동결하면서 과열에 의한 주택담보대출을 억제할 비상의 조치를 강구할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레드오션에 빠진 은행권=과열경쟁의 전형이 은행권이다. 외환위기 이후 100조원 이상의 국가적 재원(공적자금)을 받아 살아난 은행들이 전통적인 예대업무는 물론 보험과 투자은행 영역에 진출, 영세 금융회사를 잡아먹는 공룡으로 변했다.
윤 금융감독위원장은 “은행의 규모를 키우고 업무영역도 늘린 것은 금융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는데 국내은행들이 선진국처럼 투자은행의 역할을 수행하기보다 내수영업 부문에 대한 경쟁에 치우친 경향이 높다”고 지적했다.
은행권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장들이 일제히 은행대전이니 영업전쟁을 외치며 영업확대를 독려했다”면서 “은행원이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채 보험ㆍ펀드 등을 판매하면서 피로감에다 고객에 대한 서비스도 질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선환규 우리은행 주택사업단 단장은 “과거에는 은행끼리 과당경쟁을 하지 말자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는데 요즘은 출혈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재건축ㆍ재개발 수주에 국내은행은 물론 외국계 은행, 상호저축은행 및 보험사까지 뛰어드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경쟁의 질이다. 시중은행이 투자은행 역할보다는 손쉬운 분야를 힘으로 밀어붙이면서 문제가 커지고 있다. 은행간 대출 경쟁으로 4월 중 가계대출 평균금리는 5.43%로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대출금리는 떨어지고 특판예금 등으로 수신금리는 상승하면서 예대금리차는 2%포인트대에 진입하고 있다. 제일은행ㆍ한국씨티은행 등 후발 외국계 은행의 특판예금 전투에 휘말리면서 선두권 은행들이 휘청거리는 형편이다.
정용화 금감원 부원장보는 “은행들이 이젠 파생상품 등 고수익 부문으로 은행들이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비은행권도 과열 경쟁=자동차보험시장을 둘러싼 손해보험사들의 과당경쟁이 심각하다. 자동차보험 선계약을 받으며 보험료를 편법 할인하고 대형 대리점에 과다한 모집수수료를 제공하고 있다.
최용수 금융감독원 보험검사국 팀장은 “최근 자동차보험시장에서 손보사들의 경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편법영업 행위가 드러나면 즉시 검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동차보험 영업 누적적자는 4조7,000억여원에 달한다. 손보사들의 무리한 영업은 사업비 과다 지출로 이어져 지난해 2조2,000억원이 넘는 자동차보험 사업비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증권사들 역시 은행권과 판매 경쟁격화로 실적이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증권사들의 당기순이익은 3,149억원으로 전년의 1조2,476억원에 비해 9,327억원(74.7%) 감소했다.
증권회사의 주요 수익원인 위탁매매수수료와 수익증권취급수수료가 크게 감소했다. 판매수익원이 한정되다 보니 은행권과 경쟁에서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이에 비해 외국사 국내지점의 당기순이익은 2,682억원으로 전년의 2,722억원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전홍렬 금감원 부원장은 “증권업계가 경쟁이 격화되는 레드오션 형태를 보이고 있지만 자율적 구조조정과 수익다변화 노력이 가시화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은행과 증권사의 1인당 순익이 모두 외국금융기관의 10분의1 수준에서 머물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금융권이 태생적 ‘보수성’ 탓만 하다가는 빨간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며 함께 운명을 달리할 길밖에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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