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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 사업장 현대중공업마저 강성 노조… 20년 무분규 무산 우려

조합원 임금 불만 높아져 12년만에 강경파 위원장 당선<br>임단협서 갈등 증폭 가능성

지난 1990년 4월25일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1만2,000여명의 현대중공업 노조원은 1년 전 구속된 노조간부 석방을 요구하며 작업장을 폐쇄하고 파업농성에 돌입했다. 당시 노조간부는 투석용 볼트와 너트 자루를 메고 80여m 높이의 육중한 골리앗 크레인에 올랐다. 120여명의 조합원도 뒤따랐다. 경찰은 1만여명이 넘는 경력을 투입해 육해공으로 입체작전을 벌여 지상 파업을 진압했다. 결국 5월10일 마지막까지 남은 골리앗 크레인 농성자 61명이 요구사항 관철을 포기하고 13일 만에 자발적으로 내려왔다. 46명이 구속된 골리앗 농성은 현대중공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끝이 났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1988년 128일 장기 파업, 1990년 25일간의 골리앗 파업, 1994년 63일간의 LNG선 점거 투쟁 등 1990년대 중반까지 매년 파업과 직장폐쇄라는 악순환을 되풀이했다. 이 같은 강경 투쟁은 노사 모두에 심각한 상처를 남겼다.

강경 일변도의 노조활동에 변화가 찾아온 것은 1995년이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1995년 임단협에서 사측과 줄다리기 신경전을 벌이지 않고 타결 가능한 모범 안을 일괄 제시하는 방식으로 무파업 타결을 이뤄냈다. 이때부터 사측도 노조와의 신뢰 쌓기에 전념했다. 이후 현대중공업은 올해까지 19년 동안 무분규로 임단협을 타결해 노사 상생의 모범 사업장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이렇게 합리적인 노동운동을 해오던 현대중공업 노조원들이 다시 강경 투쟁의 깃발을 들고 나서 사측과 울산 산업계를 잔뜩 긴장시키고 있다. 이달 17일 실시된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강경파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실적이 부진한 상황에서 노조가 20년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강경 노선을 고수할 경우 회사 경영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18일 끝난 노조위원장 선거 개표결과 강경파의 정병모(56) 후보가 8,882표(52.7%)를 획득해 온건 노선의 김진필 전 노조위원장(45.5%)을 물리치고 새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강경파가 위원장에 선출된 것은 2001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이다. 한동안 온건ㆍ실리 노선을 걸었던 현대중공업 노조가 강경 노선으로 돌아선 것은 임금에 대한 불만이 크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19년째 무분규를 달성했지만 매년 파업을 벌이고 있는 현대자동차보다 임금 면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조합원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면서 강경파를 전면에 내세우게 됐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의 한 조합원은 "침체된 조선 경기 때문에 임금인상이 많지 않아 강성 노선의 집행부를 선택한 듯하다"고 말했다.

정 당선자는 강경 성향의 군소조직이 연대한 현장노동조직인 '노사협력주의 심판 연대회의' 소속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노사관계는 회사의 강압에 의한 인위적인 모습이었다"며 "진정한 노사관계는 노사 대등한 관계로 상대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당선소감을 밝혔다. 이는 정 당선자가 앞으로 회사 측을 상대로 강한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정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 회사 측이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공약들을 쏟아냈다. 이 가운데 임금삭감 없는 정년 60세 연장과 정규직 퇴직시 퇴직자의 1.5배에 해당하는 사내하청 근로자의 정규직 채용 등은 사측에서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항이다.

특히 대학을 가지 않는 자녀들에게 사회적응기금을 제공하라는 요구는 회사 안팎에서 너무 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3년 이상 근속한 직원에게는 중고교생 자녀 등록금 전액을 지급하고 대학생 자녀는 8학기 한도에서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고 있다. 취학 전 자녀는 유아교육 지원금으로 취학 전 1년간 매달 8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학자금을 지원하는데도 대학 안 가는 자녀에게까지 사회적응기금까지 달라는 것은 무리한 것이 지역 노동계의 설명이다.

앞서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단협 교섭에서 요구한 대학 미진학 자녀 기술취득 지원금 요구안을 내놓았다가 사회적 정서에 반하는 불합리한 요구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자진 철회한 바 있다.

최근 들어 현대중공업은 조선업황 악화로 저조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올 상반기 매출은 26조2,3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 줄었고 영업이익은 6,600억원에 그치면서 지난해보다 무려 50%나 감소했다. 3·4분기 실적도 썩 좋지 못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의 올 3ㆍ4분기 추정 영업이익은 3,07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8.31%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실적이 부진한 가운데 강경파 노조 위원장이 새로 선출됨에 따라 강경 투쟁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역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12년 만에 강성 노선의 집행부가 출범한 만큼 앞으로 현대중공업의 임단협 과정에서 노사 갈등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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