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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김석철 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 대표·명지대 건축학과 석좌교수

동남권 신공항 공약은 잘못… 국토계획 정치도구화 안돼




전두환이 찍은 남자 "대선주자들 장난 마라"
[서경이 만난 사람] 김석철 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 대표·명지대 건축학과 석좌교수동남권 신공항 공약은 잘못… 국토계획 정치도구화 안돼

대담=정두환 부동산부장 dhchung@sed.co.kr
정리=이혜진기자 hasim@sed.co.kr
사진=김동호기자 dhkim@sed.co.kr































세종시도 지방분산 효과 적은 부처 이전에 불과통일한국 대비한 새로운 공간전략 세워야 할 때'한반도 그랜드 비전' 집필이 내 마지막 공적 의무대형 건축사무소 5%가 일감 95% 독식은 문제공영제 도입, 젊은 건축가 참여 길 터 줘야작은 미술관이나 박물관 건립에 남은 힘 쏟을 것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뒤편에 자리잡은 사옥에서 기자를 맞은 김석철(69ㆍ사진)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 대표(명지대 건축학과 석좌교수)의 몸은 다소 마르고 지쳐보였다. 오랜 암 투병의 흔적 탓이리라. 하지만 인터뷰 내내 그의 표정과 말은 힘과 열정으로 가득했다.

"20년 가까이 대학에 몸담고 있다 보니 교수라는 직함이 더 맞는 것 같다"는 그는 한국 건축과 도시계획을 얘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한샘 시화공장' '예술의 전당' 등 건축 작품들은 물론 여의도 등 굵직한 도시설계 역시 그의 손을 거쳤다. 특히 한샘 시화공장은 서울경제신문과 국토해양부ㆍ대한건축사협회가 공동 주최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건축상인 '한국건축문화대상' 초대 대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 그는 오는 9월 중순에 출간할 예정인 '한반도 그랜드 비전'이라는 제목의 책 원고의 최종 수정본을 꼼꼼히 살피던 중이었다. 내용을 물으니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도시계획ㆍ건축에 대한 제언을 담은 책"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선 주자들도 모두 읽겠죠. 그리고 답이 없으면 어쩔 수 없죠. 더 이상은 나서지 않을 겁니다. 이 책이 내 마지막 공적 의무가 될 겁니다."

그는 건축가이면서 오히려 도시계획에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았다. 굵직한 도시ㆍ국토 정책 때마다 그는 늘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자기 주장으로 정관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를 만나 작품 세계와 한국의 도시ㆍ국가 인프라, 건축계에 대한 거침없는 얘기를 들었다.

외관만 멋진 건물은 '사기'다

"한샘공장은 건축가가 아닌 휴머니스트와 엔지니어로서 설계했죠. 그 공장 근로자들이 '우리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인간 중심의 설계에 신경 썼던 작품이라고 자부합니다."

지난 1992년 제1회 한국건축문화대상 대상 수상작인 한샘 시화공장은 공장이 완벽한 기능을 갖추면서도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준 파격적 실험으로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샘 시화공장은 현대 건축의 기념비적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김 교수는 "한샘 시화공장은 기술적ㆍ인간적으로도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20년 전에 이미 '에너지 제로' 건물을 지은 겁니다. 바람과 빛을 이용해 조명과 실내 온도를 조절하고 공장에서 나오는 폐자재를 갈아 태워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도록 설계됐죠."

김 교수는 건축은 종합예술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겉으로만 화려한 건물에 대해 그는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다. 에너지와 사람에 대한 고려 없이 겉만 멋지게 꾸민 건물에는 '사기'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그가 설계한 예술의 전당 시공 당시에는 건물 모형을 자비로 만들어 공사장 앞에 뒀다고 한다. "일용직 노동자들도 스스로 무슨 건물을 짓는 데 참여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예술의 전당은 내 열망의 시체

김 교수의 작품에는 '원(園)'의 이미지가 강렬하다. 예술의 전당, 밀라노시티 등이 대표적이다. 원에 대한 집착이 있었던 것일까.

"어릴 적 부산 자갈치시장에 갔다가 처음으로 여객선을 보고 흥분했어요. 구조물로서의 배를 보고 그때 충격을 받았어요. 원형으로 된 조타실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았습니다. 불경 공부를 하면서 원에 대한 집착이 생기기도 했고…."

그러고 보니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예술의 전당도 원형의 구조물이다.

"위치 때문이죠. 정북향의 건물에 햇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형 건물을 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원형 건물을 세우면 하루 종일 빛이 들죠."

우여곡절도 많았다고 한다. 원형 극장 세 개를 집어넣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다들 미쳤다고 할 정도였다.

"직접 대통령을 설득했어요. 대통령이 다 듣고 나가시다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한마디 하시더군요. '당신 역사에 남을 거요'라고."

하지만 이 같은 열정을 쏟아부었음에도 김 교수는 정작 예술의 전당을 "내 열망과 구상이 죽어서 남긴 시체와 같다"고 표현했다. 시공 과정에서 공사비 등 현실적인 문제에 맞닥뜨리면서 그가 제시했던 안대로 지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건물이 완공된 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 건물 사진을 안 찍었습니다. 조만간 나올 책 때문에 25년 만에 처음 사진을 찍었죠."

도시계획, 설탕만 제시해선 안된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도시계획이 뒤바뀌는 서울시의 건축ㆍ도시 정책에 대해 물으니 작심한 듯 쓴소리를 내놓았다. 서울시장들이 근본적인 도시 역량을 강화시키기보다는 전시성 행정에 치중해온 것을 두고 그는 "밥은 주지 않고 설탕과 조미료만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서울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다. 강남과 강북 두 개의 불완전한 도시가 한강으로 단절돼 서로 마주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부에 불필요한 교통량이 그렇게 많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환자'인 서울에 영양이자 밥은 무엇일까. 그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아이디어부터 중장기 과제까지 다양한 시정안을 한 매체를 통해 기고로 제시했었다. 당시 그는 ▦시민광장과 재래시장을 살릴 것 ▦개보수 매뉴얼을 만들어 저렴한 비용으로 저소득층의 집을 고칠 것 ▦초고층 유리건물을 규제할 것 ▦사대문 안을 역사특구로 지정할 것 등을 내놓았다.



9월 정부부처 이전을 앞두고 있는 세종시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과천이 이사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지방분산이라고 법석을 떨면서 왜 행정부처가 이전해야 하느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대선 주자들도 국토 인프라로 장난 말아야

김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과학벨트 입지를 선정하기 전, 약 50분간 독대를 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대전으로 입지 선정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는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다시 논란을 빚고 있는 동남권 신공항 건립 문제에 대해서도 정치권을 향해 경고했다. "2,500만명 정도의 배후인구가 있어야 신공항이 제 기능을 합니다. 공약에 끌려 건설을 시작한다면 짓는 도중 문닫아야 하는 사태가 올 것입니다."

그는 "이 대통령에게 공약을 파기하라고 자신 있게 얘기했다"며 "이번 대선 주자들도 국토 인프라를 갖고 장난 치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9월 중순에 내놓을 '한반도 그랜드 비전'이라는 제목의 책에 상당한 애착을 보였다. 그가 대선 주자들에게 던지는 비장한 정책 제언이다. "암으로 입원했을 때도 매달렸던 원고입니다. 통일 한국시대에 대비하고 한민족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공간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신념으로 썼죠."

직설적인 성격 탓일까. 그는 단 한번도 공직이나 건축 관련 단체장을 맡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유독 많은 정관계 인사들이 찾아온다. "김문수 지사가 대선 출마 선언 전에 찾아왔었어요. 어떤 경우라도 출마하라고 권유했죠. 대통령이 되고 안 되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죠. 보수 진영에 희망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는 의미였습니다."

열의·자격 있는 젊은 건축가 키워야

그의 비판은 그가 몸담고 있는 건축계로도 향했다.

"유능한 후배인데 설계를 못하고 건설사에서 일반 업무를 하고 있더군요. 한때는 대학교건축학과 진학이 의대보다 어려운 시절이 있었는데 그렇게 어렵게 들어가 공부한 학생들이 심지어 실업자가 돼 있으니…."

그는 대형 건축사사무소의 독점에 강한 비판을 제기했다. "지금은 일의 95%를 5%의 사무실이 다 하고 있어요. 공공기관에서 발주하는 설계는 여러 건축가에게 기회가 갈 수 있도록 '일종의 공영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특히 젊은 건축사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해요. 실적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열의와 자격이 있는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는 책 출간이 끝나면 작은 건축 작품 하나에 매달릴 생각이다.

"20세기 최고로 꼽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프랑스의 롱샹교회입니다. 300㎡ 미만의 작은 건축물이지만 전세계 사람들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런 작품을 하나 남기고 싶어요."

제주도나 서울 양재동 인근을 건축 대상지로 꼽고 있다고 한다. "작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될 겁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오면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할 수 있도록 명상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들고 싶어요"

대형 공공건축물과 도시, 그리고 한반도를 고민하는 대가가 결국 다시 돌아온 곳은 '작은 건축물'인 셈이다.


조창걸- 후원·감시자 역할로 공공건축·도시설계 집중에 큰 도움백낙청- 좋은 집 짓는 것 죄스러워해… 진보의 깨끗함 알게 해줘
■ 김 교수의 평생지기 조창걸 회장과 백낙청 서울대 교수
이혜진기자
김석철 교수에게는 평생의 지기(知己) 둘이 있다.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다. 김 교수는 두 사람을 지금도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는 사이라고 한다.

조 회장은 서울대 건축과 시절 선후배로 만났다. 조 회장은 경영의 길로 들어서면서 진로가 갈렸다. 그러나 조 회장은 줄곧 김 교수의 후원자이자 엄한 감시자 역할을 해왔다. "조 회장은 내게 세계를 압도할 만한 건축을 하라고 항상 격려합니다. 내가 한눈 파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덕분에 상업건축 대신 공공건축, 그리고 도시설계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한샘 시화공장은 조 회장이라는 건축주가 있었기에 가능한 작품이기도 했다. 김 교수와 조 회장은 이 공장을 설계하기 전, 독일과 스웨덴의 가구 공장들을 직접 다니며 작품을 함께 고민했다.

백 교수와의 우정은 세간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언뜻 스스로 '보수'라고 말하는 김 교수와 '진보'의 대명사인 백 교수의 우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리끼리 웃으면서 얘기합니다. 11명이 같이 가야 되는데 자리가 10개밖에 없으면 보수는 1명이 돌아가면서 서서 가고 10명이 편히 가자는 것이라면 진보는 11명이 불편하더라도 10자리에 같이 끼어 앉아 가자는 것이라고. 방법론의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11명이 모두 목적지에 가야 한다는 것은 보수나 진보나 같은 거죠."

그가 백 교수의 집을 설계해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분이 좋은 집 짓는 것을 그렇게 죄스러워 하더군요. 대한민국 진보가 얼마나 맑고 깨끗하게 사는지 알게 됐습니다."

김 교수는 박정희 기념관 설계도 자청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익환 목사의 기념관 설계를 큰아들 문호근씨로부터 부탁 받기도 했다. 두 기념관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완성을 보지는 못했지만 좌우를 넉넉히 품어내는 대가의 품을 가늠케 하는 일례다.

그의 동생은 바로 김석동 금융위원장이다. 동생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태어난 애국자이자 수재 중의 수재"라는 게 김 교수의 답이다. 천재란 창조적이고 비상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수재는 현실의 질곡 속에서 역사와 씨름하며 일을 해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얼마 전 제수씨가 내 비서한테 동대문에서 제일 싼 도배집 좀 알아봐달라고 한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청렴ㆍ열정ㆍ능력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 약력

▦1943년 함경남도 안변 ▦1962년 경기고 ▦1966년 서울대 건축학과 ▦1969~1971년 서울대 응용과학연구소 연구교수 ▦1972년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 설립 ▦1998~2000년 이탈리아 베니스건축대 도시설계학과 객원교수 ▦2000~2003년 미국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 객원교수 ▦2003~2004년 중국 칭화대 객원교수 ▦2002~2008년 명지대 건축대학 학장 ▦명지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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