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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K사이언스도 K팝처럼


지난 2월 말 마감한 기초과학연구원의 연구단장 모집에 100명 이상이 응모했다고 한다.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어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앞날, 새로 시작하는 기초과학연구원에 거는 국민적 기대 또한 크다. 우리의 힘으로 기초과학 분야에서도 K팝 못지않은 'K사이언스'를 뽐낼 때가 오기를 기대한다.

기초과학은 주어진 문제를 푸는 연구가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해결해나가는 분야다. 올림픽은 정해진 경기 방식에서 우수한 성적을 낼 때 우승할 수 있지만, 기초과학은 대부분 스스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선도해나갈 때,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을 창의적 방법으로 개척해서 나갈 때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다.

기초과학을 발전시키는 두 축은 창의성과 연속성이다. 간혹 창의적 능력만 강조되는 경우가 있으나 창의성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꾸준히 진행돼오는 흐름에서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 우리는 우리가 이어온 역사를 무시해서는 안 되며 더디더라도 방향을 정해 꾸준히 정진해나가는 역사를 만들어가고 이어가야 한다.

기초과학 실력 꾸준히 다져야 결실

20여년 전 일본의 대학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그들이 꾸준히 내고 있는 우수한 연구 결과도 부러웠지만 더 부러웠던 것은 실험실 구석구석에 쌓여 있던 실험장치들이다. 당시 제한적인 연구비로도 그들이 어떻게 우수한 연구성과를 꾸준히 내는지 궁금했었는데 여기저기 놓인 손때 묻은 기기들을 보며 그들의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교육과학기술부의 연구재단(예전의 과학재단과 학술진흥재단) 등에서 꾸준히 연구 지원을 한 덕에 연구환경이 예전에 비해 크게 향상돼 손때 묻은 기기들이 쌓여가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의 연구 저력도 매우 향상됐다. 꾸준히 쌓아온 연구 저력 속에서 창의성이 생기고 발휘될 때 세계가 인정하는 빛나는 성과를 뽐낼 수 있을 것이다.

기초과학은 조급하게 달려들어 승부를 겨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최근 간혹 우리의 것을 무시하고 외국 것을 먼저 쳐주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우리의 능력을 스스로 비하하는 실망스러운 일이다. 우리 자신의 실력 없이 우수한 외국의 연구자를 국내에 유치해 기초과학을 진흥하고자 한다면 모래 위에 호화로운 집을 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당장 겉보기에 그럴듯한 성과를 이룰 것 같아 보일지 모르나 후대까지 이어지는 성과가 될 수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단단한 암반 위에 기둥을 세워 든든한 집을 지을 때 우리의 빛나는 연구 성과를 자랑할 수 있고 다음 세대에 당당하게 물려줄 수 있다.



우리의 기초과학 수준은 발아기(1950~1960년대), 묘목기(1970~1980년대), 성장기(1990~2000년대)를 거쳐 이제 개화기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연구장비를 원조 물자에 의존하던 발아기, 차관자금으로 마련하던 묘목기를 거쳐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우리 힘으로 세계 수준의 연구장치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성장기를 잘 거쳐왔다. 포항가속기연구소는 방사광가속기를 건설해 지난 10여년간 성공적으로 운영해왔으며, 국가핵융합연구소는 우리 손으로 초전도 토카막 장치를 건설해 세계가 주목하는 핵융합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20년 쌓은 연구저력 이젠 꽃 피울 때

광주과학기술원의 고등광기술연구소는 세계최고 출력의 펨토초 페타와트 티타늄사파이어 레이저를 개발해 선진국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기초과학은 이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개화기에 접어들고 있다. 이런 때에 기초과학연구원을 개원하는 것은 때를 잘 맞춘 일이다. 그러나 조급한 마음으로 서두르면 제대로 된 결실을 얻을 수 없다. 튼튼한 가지 위에 꽃을 피우고 꾸준한 정성과 노력으로 가꿀 때 아름다운 열매가 열려 전세계가 K사이언스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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