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재무부의 영문 약자인 'MOF(Ministry of Finance)'에 조직폭력배를 뜻하는 '마피아(Mafia)'라는 단어가 결합돼 탄생된 모피아. 이 단어는 사실 어원부터가 음습한 힘을 함축한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한 집단에서 폭력배라는 음(陰)의 단어가 결부돼 정상적인 양(陽)의 조직으로 자리하는 것 자체가 역설적이다. 모피아는 이렇듯 이질적인 용어의 절묘한 화음 속에서 온갖 견제에도 굴하지 않고 끈질긴 권력의 생명력을 이어왔다. 때로는 한 세대가 흘러갈 때마다 '이헌재ㆍ강만수'로 상징되는, 카리스마를 품어내는 '대부(大父)'를 만들어내고 그를 고리로 끈적끈적한 인적고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살아서 숨쉬는, 그리고 적어도 수십년 동안은 변하지 않을 권력의 핵이자 '인(人)의 장막'이다.
◇부침의 세월… 위기 때마다 부활=지난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만들어진 재무부. 개 중에서도 금융정책을 입안한 관료들은 굴곡의 한국 경제만큼이나 극심한 부침의 세월을 보내왔다.
외환위기의 주범이라는 '욕의 화살'을 받으면서 수술대에 오르고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에는 모피아에 대한 노골적인 견제 속에서 경제기획원(EPB) 출신들에게 수장 자리를 내주기도 했지만 자석 같은 유대 속에서 부활에 성공했다. 정치권 출신의 전직 고위 인사는 "정권 초기 때마다 모피아는 일종의 '부패 권력' '기득권 세력' 등으로 치부되면서 통치권자들이 멀리하곤 하지만 집권 1년만 지나면 다시 찾게 된다"며 "서로간에 밀고 당겨주는 묘한 화음 앞에서는 통치권자도 당할 수가 없다"고 털어 놓았다.
◇거대한 계보 형성… 권력의 핵으로=모피아는 관료 집단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거대한 계보를 갖고 있다. 그 핵심 줄기는 '금융정책국(과)장 라인'이다. 과거 재무부 시절 이재국장까지 포함하는 금정라인은 대한민국 시장의 물줄기를 형성해왔다.
그들의 역사는 이름 석자들에서부터 힘을 연출한다. 1974년 옛 재무부의 이재1과가 금융정책과로 이름을 바꾼 후 첫 과장인 이헌재 전 부총리는 김용환 당시 장관의 방을 무시로 들락거려 '부(副)장관'으로 불리기도 했다. 명실상부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강만수 경제특보와 윤진식 의원 역시 동시대 이재국장과 금정과장을 통해 끈을 형성했다.
1980년대 말 윤 의원이 금정과장을 지내던 시절, 그의 아래 주무사무관이 변양호 전 금융정책국장(현 보고펀드 대표)였고 최중경 경제수석,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 김석동 농협대표, 권혁세 금융위 부위원장 등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대거 포진했다. 이들은 이후 금정국장과 국제금융국장 등을 거치면서 2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우리 금융시장의 최대 파워군을 구축하고 있다.
지금의 경제 수장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임종룡 차관 역시 금융정책실장과 금정과장을 지냈다. 임 차관은 정건용 금정국장 시절 김석동 당시 금감위 국장과 함께 '좌(左)석동-(右)종룡'으로 불리기도 했다.
정건용씨와 유지창 현 유진투자증권 회장은 산업은행 전 총재와 금감위 부위원장에 이르기까지 서로 바통을 넘겨주며 같은 자리를 거치는 끈끈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밖에도 임영록 KB금융지주 사장, 임승태 금융통화위원, 김광수 현 한나라당 전문위원, 최상목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 등도 금융정책 라인을 거치면서 모피아의 대표 군단이자 금융시장의 주류에 포진해 있다. 그들은 지금도 검찰 조직 이상으로 '선배'에 대한 깍듯한 예우를 표시한다.
국제금융통이라 불리는 관료들 역시 본류는 금정라인이다. 진동수 금융위원장과 허경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신제윤 기획재정부 차관보 등은 경제 정책 전반을 이끄는 막강한 실세이자 현존하는 모피아 인맥의 핵심이다.
모피아 중에는 정치적으로 성공하면서 막강한 인맥을 구축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이종구 의원 등은 금정과의 핵심이었던 통화계장 출신들이다.
◇계속되는 '대물림 인사'… '그들만의 리그' 비판도=전ㆍ현직 모피아들은 다양한 사적 모임을 통해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이 속에서 절묘하게 권력을 유지해나간다. 현직 한 관료는 "전직에 있음에도 현재 돌아가는 관계와 민간 금융회사의 인사 구도까지 훤히 꿰뚫고 있어 깜짝 놀랐다"며 "그들의 인적 호흡은 한마디로 '장막'에 비유할 수 있다"고 표현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른바 '이헌재 사단' 역시 모피아의 네트워크 속에서 힘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모피아의 힘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민간에 대한 영향력 때문이다. 때로는 정치적 연줄이 작용하지만 그들에게는 "선배가 잘 나가야 나도 산다"는 말이 불문율처럼 돼 있다. 실제로 모피아 출신의 한 전직 관료는 사석에서 "내가 미쳤다고 다른 사람 챙겨주나"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기도 했다. 지금은 덜하다고 하지만 국책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대한 '대물림 인사'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후배를 위해 국책기관의 한 자리에서 물러나주는 대신 다른 자리를 보장해주는 전형적인 '밀고 당겨주기식' 인사가 되풀이되는 이유다.
이런 상황은 때로 민간 출신 인사에 대한 구축(驅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민간 출신의 한 고위인사가 들어오자 관료들 간에 일종의 따돌림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과거의 위계 질서 사라져… 갈등과 반목도=모피아는 검찰에 버금갈 정도로 철저한 상명하복을 자랑한다. 더욱이 이른바 인맥을 형성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전통의 명문학교, 즉 경기고와 서울ㆍ경복고와 서울상대ㆍ법대 등으로 국한돼 있고 지역별로 다시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기에 수직적 인맥 구조는 더욱 심해진다. 하지만 최근에는 특유의 위계 질서가 사라지는 모습도 보인다. 현직 고위 관료 A씨는 "민간 출신에 대한 우대 속에서 퇴로가 좁아지면서 선배를 챙겨주는 '미풍양속'이 사라지고 있다"며 씁쓸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실제로 과거 차관 인사 당시 고시 선배가 후배에게 양보를 요구하자 "미래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라며 자리를 꿰차기도 했다. 이런 속에서 최근에는 모피아들끼리도 영향력 있는 정치권 인사에 줄을 대려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 학연 대신에 지연, 즉 TK(대구ㆍ경북) 출신의 유력 인사에 줄을 대고 이 속에서 인사권자인 금융당국의 수장이 인사권을 잃어버리는 형국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현직 관료 B씨는 "모피아는 이제 '인적 네트워크'라기보다 하나의 자연스러운 '집단'으로 바뀌고 있다"며 "밀어 당겨주기보다 각자도생의 생존전략이 득세하고 있다"고 촌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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