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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사이드] 바람 잘 날 없는 의료계 영역 다툼

건보 둘러싼 제로섬 게임… 뒷짐 진 보건당국이 문제 키워<br>"약사 제조 한약에 건보 적용 안돼" 한의사 반발에 사업 시행 불투명<br>간호조무사 면허제로 변경 등 사안마다 이해관계로 갈등 빚어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은 우리나라 의료계를 두고 하는 말인 듯 하다.

의사협회, 한의사협회, 약사회, 간호사협회 등 수많은 보건의료계 직능단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집회를 하고 성명서를 낸다. 정부를 향한 투쟁도 있지만 직역 단체들 간의 영역 다툼이 대다수다. 갈등 탓에 정부 정책이 발목을 잡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례로 지난 10월 보건복지부는 2,000억원의 재정을 투입해 치료용 첩약 조제 시 건강보험을 적용해 주는 사업을 내년부터 3년간 시범 실시한다고 발표했지만 한의계의 반대로 내년 시행이 불투명해졌다.

환영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한의사들이 협회 사무실을 점거하고 밤샘 농성에 들어가는 등 크게 반발한 것이다. 사업에 한의사뿐 아니라 한약조제약사 등 약사가 포함됐다는 것이 이유였다.

한의사들은 "진단권도 없는 약사가 조제한 한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은 한약의 신뢰성만 떨어뜨릴 뿐"이라지만 정부로선 20여 년간 한약을 조제해온 한약조제약사를 이번 시범사업에서만 빠지라고 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다. 지난 8월경에는 의사와 한의사, 약사 간에 고소ㆍ고발전이 벌이지기도 했다. 한의원에서 초음파를 사용하고 약국에서 무면허자가 약을 판다는 등의 약점을 잡아 의사들이 대거 민원을 넣었다. 9월에는 그 동안 자격제로 운영되던 간호조무사에 면허를 발급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돼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크게 충돌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의료소비자들의 피로감은 상당하다. 틈만 나면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의료계 전반에 대한 실망도 크다. 그런데도 이 같은 영역 다툼은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뛰는 의료기술, 기는 보건당국=전문가들은 의료계 영역 다툼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국내 의료법이 너무 포괄적인데다 빠르게 발전하는 의료현장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의료행위와 한방의료행위를 구분하는 이중 제도도 문제를 키운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의료법은 의사ㆍ치과의사ㆍ한의사ㆍ조산사ㆍ간호사를 의료인으로 두면서도 각 종별에 따라 할 수 있는 업무와 할 수 없는 업무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 면허 이외의 의료행위를 한 경우에는 무면허 의료행위로 처벌받게 된다.

문제는 새로운 의료기술들의 경계를 구분 짓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근육내자극요법(IMS)을 들 수 있다. IMS는 1회용 바늘 등 끝이 뾰족한 도구를 이용 심부근육을 자극해 신경의 활성화를 돕고 근육통증을 완화하는 치료법이다. 미국 통증의학과 등에서 널리 사용되는 시술로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신의료기술로 등재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10년 넘도록 별다른 대답이 없다.

한의학계가 "IMS는 침을 이용하는 한의학적 치료법인 침술과 동일하다. 한방의 고유의료행위를 의사가 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이라며 거세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방 치료에 앞서 초음파나 엑스레이 등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해 진단하게 해달라는 한의사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의사단체가 반발한다.

한의사 측은 "한방의료와 의료를 나누는 기준은 치료의 원리가 한학에 있냐 서양의학에 있느냐로 구분해야 한다. 환자를 관찰하고 진단하는데 좀 더 편리하고 발전된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의사 측은 "국민의 건강 보호를 위해 면허제도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해석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갈등을 부추기는 건 보건당국의 안일한 태도다. 복지부는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당사자 간에 해결할 일"이라는 대답을 내놓은 채 의료법의 유권해석 정도에만 내놓는다.

보건당국 스스로가 기존의 경계마저 모호하게 만드는 사업과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천연물신약 사업이다.



천연물신약의 범위는 사업 초반과는 달리 2008년 한약 복합 처방 추출물까지로 넓어졌고 임상 기준 역시 한방 경험을 근거로 독성검사와 일부 임상시험까지 면제해 주는 등 크게 완화됐다. 이런 과정에서 한의원에서 판매되던 한방제제가 천연물신약으로 나오곤 했는데 대부분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한의사는 처방을 내릴 수가 없고 의사만 처방할 수 있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한의사들은"시판되고 있는 천연물신약 대부분은 한의사들이 조제해오던 한약을 캡슐에 담거나 알약으로 만들었을 뿐인데 신약이라는 이름 하에 의사가 처방하고 약국에서 판매되고 있다"며"한의사들도 환자의 체질이나 상태에 따라 주의 깊게 처방하는 약들을 비전문가들이 마구잡이로 처방하고 있어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주장한다.

◇건강보험 둘러싼 '제로섬 게임'=의료계 영역 다툼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국내 의료제도의 특수성에 기인한다는 의견도 있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건강보험에 가입해 있고, 의료기관 역시 무조건 건강보험 가입자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실시하고 있다. 의사든 약사든 간에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건강보험이라는 파이를 나눠 먹게 되는 구조인 셈이다. 건강보험 재정이 무한할 수는 없기에 이 경우 한 편이 많은 양을 가져가면 한 편은 양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제로섬 게임의 형국에 놓인다.

여기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 인프라의 빠른 확충을 위해 공공의료보다 민간의료에 크게 기대왔다. 열에 아홉은 개인이 운영하는 의료기관인 상황에서 파이가 줄어드는 것은 곧 개인의 경제적 곤궁으로 이어진다. 문닫는 한의원과 개인의원, 약국 등이 늘어나면서 각 이익단체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박하정 가천대학교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한의(중의)가 있는 중국만 해도 직역간 충돌은 우리보다 적은데 그 이유는 대부분 의료를 국가에서 운영하는 식으로 비영리화돼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는 개인사업자인 민간의료기관이 대다수로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 한의사 역시 "시간과 비용을 들여 국가 면허를 땄으면 그에 걸 맞는 배타적 업무 영역을 확보해 생존할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냐"며 "동료들이 하나 둘씩 폐업하는 걸 보고 나 역시 갈수록 병원 운영하기가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체면 차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보건의료 직능위 발족… 갈등 해소 첫걸음 산뜻



최근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의료계 직역 갈등에 따른 사회적 소모가 심각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갈등 해소를 위한 장을 마련했다. 지난 달 27일 법조ㆍ언론ㆍ소비자단체 대표 등으로 구성된 보건의료직능발전위원회가 출범한 것이다. 외부인의 객관적 시각으로 보건의료계 내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목표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지난 7일에는 위원장인 송진현 변호사와 공익위원 7명, 대한의사협회ㆍ대한한의사협회ㆍ대한약사회 등 7개 직능단체 대표들이 첫 모임을 가졌고 분위기도 고무적이었다는 전언이다.

복지부 한 관계자는 "갈등을 풀어갈 수 있는 공식 채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대부분 높게 평가하고 있다"며"단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분쟁의 소지가 적은 것부터 하나하나 풀어가다 보면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의료계 현장에서는 위원회의 영향력과 의미에 대해 아직 반신반의하는 모습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의료계 현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외부 전문가들이 얼마만큼 공정한 해법을 내놓을지 회의적이다"며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고 결정이 각 단체의 이익으로 직결되는 사안이 많아 권고안이 나온다 해도 순순히 그것을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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