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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12월 3일] 노사관계 선진화의 힘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후진성을 들먹이는 것만큼 진부하고 식상한 일도 없을 것이다. '전투적 노조' '적대적 노사관계' 등은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논할 때 노상 등장하는 단골용어 비슷하게 됐고 국제평가에서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꼴찌라는 사실은 이제 뉴스거리도 안 될 정도로 무감각해졌다. '노사관계 개혁' '선진화' 등 거창한 슬로건도 오랫동안 오ㆍ남용한 나머지 단어가 지니는 본래 의미는 희미해지고 의례적인 구호쯤으로 여겨질 지경이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작은 모임에서 만난 대기업 간부의 불쑥 던진 한마디가 한동안 잊고 있던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실감나게 했다.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일본만큼만 돼도 우리 회사는 날아갈 수 있습니다." 이 짧은 한마디만큼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후진성을 명료하게 표현하고 선진화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나타내는 말도 드물 것 같다. 날지 못해 애 태우는 기업들 경제가 황금기를 구가한다면 노사관계가 다소 어렵고 짐이 돼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사가 한마음으로 뭉쳐도 어려운 글로벌 위기상황에서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내걸고 툭하면 파업에 나선다면 기업의 생존은 장담할 수 없을 뿐더러 경제도 불구가 된다. 다행히 그 회사는 세계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좋은 성과를 거둔다고 한다. 그러나 후진적 노사관계 때문에 회사가 어려워지거나 망하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치열한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기업으로서는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사실도 그에 못지않은 고통일 수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일본 정도만 되게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는 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13년 전 제정된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및 복수노조 허용에 관한 법 시행을 한달여 앞두고 노동계와 정부가 또 한차례 밀고 당기는 홍역을 치르고 있다. 미룰 만큼 미뤘으니 이제 법을 시행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입장인 데 반해 노동계는 또 한차례 유예하자는 입장인 것 같다. 반면 사용자 측인 재계 입장은 다소 엇갈리는 것 같다. 산업현장의 혼란을 우려해 복수노조 반대에 비중을 두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전임자 급여지급만 금지되면 복수노조 문제를 비롯한 나머지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이기 때문에 이번에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는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업도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노총이 복수노조 반대,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수용하되 일정한 준비 기간을 달라는 타협안을 제시해 귀추가 주목된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의 진로와 홀로서기가 어려운 중소기업 노조들을 감안한 현실적 타협안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그러나 복수노조 반대를 택한 것은 근로자의 단결권이라는 근본원칙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고 지난 13년 동안 아무런 준비도 없다가 이제 와서 전임자 급여의 자율해결을 위한 시간을 더 달라는 것은 결국 또다시 법 시행을 유예시키려는 전략에 불과하다는 혹평도 나온다. 공을 받은 재계와 정부, 그리고 정치권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의 입장이 노조전임자 급여의 경우 종업원 1만명 이상의 대기업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복수노조는 당분간 불허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온전한 법 시행은 이번에도 물 건너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전임자 임금문제라도 풀어야 노사문제는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대한 경제 문제인 동시에 폭발성이 강한 정치적 문제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절충과 타협의 불가피성은 인정된다. 그러나 아무리 타협이라도 진전은 있어야 한다. 최소한 전임자 임금문제만이라도 해법이 나와야 한다. 늘 그 자리에서 맴도는 식의 허례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후진적 노사관계라는 거추장스런 짐을 안고 노사갈등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거대 중국과 주도면밀한 일본을 이기기는 어렵다. 일본 정도의 노사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라는 질문부터 던져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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