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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안된 60세 정년시대] <1> 갈 길 먼 제도 정착

눈덩이 인건비 등 불보듯… 기업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

임금피크제 도입 등 노조 설득 만만찮아

기업 4곳 중 3곳 "정년 연장 엄두도 못내"

임금체계 바꾸고 고령자 업무개발 시급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본회의에서 최경환(왼쪽)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김대환(오른쪽) 노사정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권욱기자


"정년이 연장되면 연간 인건비만 최소 100억원이 더 들어가는데 가뜩이나 경기도 좋지 않아 부담이 큽니다. 결국 임금피크제 도입이 관건이지만 노조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네요."

국내 대기업 A사 인사팀에 있는 박모 과장은 정년 문제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정년이 55세인 A사는 오는 2016년 정년 60세 시행을 앞두고 연일 대책회의를 열고 있지만 논의를 하면 할수록 어려운 점만 눈에 띄고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정년 연장을 앞두고 A사가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비용 문제다. A사는 매년 100여명이 정년퇴직을 할 정도로 근속연수가 긴 편이다. 정년이 늘어나면 매년 인건비로만 최소 100억원 이상을 더 써야 하는데 정년 60세 도입 5년째인 2020년에는 단순 계산으로만 봐도 연간 500억원의 비용이 더 들어간다. 박 과장은 "가족같이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장이라는 점을 노사 모두 자랑처럼 여겨왔는데 정년 연장으로 이제는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건비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복지비도 정년 연장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50대 직원들이 독차지하다시피 하는 대학 학자금 지원규모가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비용 부담을 해결하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것이지만 노조의 반대로 아직 얘기도 꺼내지 못한 상태다.

정년 연장으로 조직의 활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도 걱정스럽다.

A사의 과장급 이상 간부직원은 현재 전체 직원의 40%를 밑돌지만 정년이 연장되면 50%를 넘어선다. 과도한 간부 비율 증가에 대비해 A사는 대리와 과장 등의 승진 시점을 1~2년 늦추는 방안도 검토했는데 경쟁사들보다 한 직급에 오랜 시간을 머물게 할 경우 자칫 우수 인력을 빼앗길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여기에 인건비 부담을 못 이겨 신입사원 채용을 줄인다면 간부는 넘치고 젊은 사람은 드물어지면서 조직의 평균 나이가 크게 올라가게 된다. 박 과장은 "임원들이 자기보다 나이 많은 부하직원들을 부리는 것도 간단하지 않다"며 "고령 근로자들에게 적합한 직무를 찾는 것도 과제"라고 말했다.

대기업보다 1년 늦은 2017년부터 정년 60세가 적용되는 중소기업 B사는 아직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시간이 있다고 여유를 부리는 게 아니라 대책 자체가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경영총괄팀장을 맡은 김모씨는 "정년 연장에 대비해 제대로 된 검토조차 시작하지 않았다"며 "솔직히 말해 어떻게 대응할지도 모르겠고 현안을 처리하기에도 바쁘다"고 털어놓았다.

물론 인건비 상승에 대해 고민은 하고 있다. 김 팀장은 "중소기업은 인력층이 얇아 일을 잘하는 소수의 관리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며 "이들이 정년을 맞으면 계약직으로 다시 고용해왔는데 앞으로 정년이 연장되면 그 기간만큼 모두 정규직으로 써야 하므로 비용이 더 들 것"이라고 전했다.



25일 현재 정년 60세 시행까지 남은 시간은 약 1년5개월 정도지만 A사처럼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거나 B사처럼 아예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 등 우리나라 기업의 상당수는 준비상태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3년 현재 전체 사업장 120만9,000곳 가운데 정년제를 도입한 곳은 18.3%로 300인 이상 사업장의 90.4%가 정년제를 운영하고 있는 데 비해 300인 미만 사업장은 고작 18.2%에 그쳤다. 단일정년제인 사업장 중 정년이 60세 이상인 곳은 300인 이상 사업장이 22.8%, 300인 미만 사업장은 44.2%였다. 전체 사업장을 놓고 보면 300인 이상 기업 5곳 가운데 1곳, 300인 미만 사업장 10곳 가운데 1곳만이 정년 60세인 셈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서울경제신문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달 25일부터 8월6일까지 기업 인사담당자 122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정년 60세 도입에 대비해 충분히 준비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매우 그렇다 포함)'고 대답한 비율은 고작 23%뿐이었다. 반면 '아니다(매우 아니다 포함)'라는 응답은 34.4%로 긍정적인 대답자 수를 크게 웃돌았다.

'준비가 잘 안 된 이유'를 다시 물었을 때는 응답자의 절반가량인 42.9%가 '어떻게 대비할지 모른다'고 답했다. 또 '아직 시간이 남아서(31.0%)' '준비할 게 없어서(16.7%)' '노사 의견 불일치(7.1%)' 등이 뒤를 이었다.

기업들은 정년 60세 도입에 대비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부딪히게 될 위기 상황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돼 있었다. 정년 연장시 예상되는 어려움에 대한 질문에서 응답자의 62.3%(복수응답)가 '조직의 노후화에 따른 업무 효율성 하락'을 꼽았고 '인건비 상승(32.0%)' '신규 고용창출의 어려움(30.3%)' 등을 선택한 비율도 높았다.

정년 60세 정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로 응답자의 절반인 50.8%는 '임금피크제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50.8%)'을 제시했다. '고령 근로자 적합업무 개발(33.6%)'을 고른 사람도 많았다.

물론 정년 60세 시행 시기가 점점 다가오면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미리 정년을 연장하는 기업들도 있다. 올 2월 삼성전자가 정년을 55세에서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56세부터 매년 임금을 10%씩 깎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으며 5월에는 SK텔레콤이, 6월에는 현대건설이 건설업계 최초로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기업 대다수는 노조의 반대나 기업의 역량 부족 등을 이유로 정년 연장 작업에 손도 못 대고 있는 형편이다.

김동배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근로자가 임금을 양보(임금피크제)하면 회사는 정년까지 고용 보장에 대한 확신을 줘야 한다"며 "노사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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