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이 화두가 되면서 걱정이 앞선다. 신자유주의가 기지개를 펴면서 대·중소기업 간 격차를 더 벌릴 것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당장 대기업의 규제 철폐, 중소기업 적합업종의 졸업과 폐지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규제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우문인가. 정부는 균형 잡힌 건강한 사회를 위해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존재하고 따라서 규제의 본질은 약자 보호에 있다.
대-중기 격차 더 벌릴까 우려
결국 산업에서 규제의 본질은 중소기업 보호에 있다는 얘기다. 중소기업의 보호는 대기업의 무분별한 시장지배력 억제, 공정거래 질서 확립을 통해 공생의 산업생태계를 회복함으로써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심화되고 소상공인수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지금은 규제개혁보다 진흥이 더 시급한 것은 아닐까.
물론 정부가 중소벤처의 육성과 소상공인의 경쟁력 강화 등 진흥사업을 추진해왔다. 여기에는 정보화 사업도 포함돼 있다. 정부의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은 중소벤처와 소상공인의 경쟁력 강화와 시장창출을 통한 ICT 중소벤처의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함이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목표는 달성했으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실패' 사례라 아니할 수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소기업의 전사적자원관리(ERP) 구축 지원사업이다. ERP는 통상 1억5,000만원 정도의 투자가 요구되는 기업의 핵심 정보화 도구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대략 3,000만원 정도에 보급하는 사업으로 시행했다. 이는 인건비도 제대로 못 건지는 수준으로서 ERP의 시장가격과 질서를 파괴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정부지원으로 많은 ERP가 보급됐지만 상당수 시스템이 컴퓨터 안에서 잠자고 있다. 이 사업 시행 10여년이 지난 지금 세계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국산 ERP는 하나도 없다.
응용프로그램 서비스 제공자(ASP) 지원사업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컨소시엄 5개를 ASP사업자로 지정하고 영세상공인들의 정보화를 적극 지원했었다. 이 사업은 영세상공인들의 고객관리 등을 위한 시스템을 빌려 쓰게 함으로써 상공인들의 경쟁력 강화와 중소 SW업체들의 시장창출을 도모하고자 했다. 그러나 간신히 출장비 정도를 지원하던 이 사업으로 인해 '세일스포스닷컴'과 같은 세계적 기업이 출현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벤처-ICT 기업 상생토록 조화를
과거 여러 정책 실패사례를 보면서 시장의 수요와 현실을 감안한 진흥정책이 선행되고 창의력과 혁신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규제개혁이 이뤄졌으면 하고 가정한다면 지나친 바램일까. 미래창조과학부는 최근 2016년까지 규제의 20% 이상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규제개혁 의지를 환영하면서 중소ICT벤처의 진흥과 균형을 이루는 규제개혁이기를 바란다.
사실 우리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ICT에 대한 인식이나 투자의지는 약한 게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경제를 위해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접목할 ICT에 대해 중소기업 CEO들이 매력을 느끼도록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각 기업에 꼭 필요한 맞춤형 시스템을 비롯해 도입 및 운영인력 등 각종 지원 등을 통해 반드시 정보화 추진 의욕을 불러일으켜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 사업에 참여하는 ICT중소벤처도 최소한의 성장성과 수익성을 보장받고 ICT 벤처가 생태계 속에서 더불어 성장하도록 하는 규제와 진흥의 조화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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