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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죽은 물가, 산 물가
입력2011-06-15 18:11:18
수정
2011.06.15 18:11:18
중세시대 고명한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어떤 물건마다 '공정한 가격'이 있기 때문에 그 이상 높은 가격으로 팔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공정한 가격으로 팔아야 하는 것은 종교적 의무로써 강요됐다. 이에 비하면 2,600여 전 고대중국 관중(管中)의 물가론은 현대경제학에서 명료하게 정리된 가격법칙의 핵심을 찌르는 지혜를 담고 있다. 그에 따르면 물가는 강제적인 방법으로 고정시킬 수 없는 것이었다. 물가를 통제해 고정하면 높고 낮음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변화가 없으면 유통이 안 되고 물건을 구할 수 없다고 했다. 가격통제의 폐해를 꿰뚫어 본 것이다.
매번 실패로 끝난 가격 통제
그러나 가격통제에 대한 유혹은 늘 있어왔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대신 정부라는 '보이는 손'을 신봉한 공산국가들만의 얘기는 아니다. 시장경제 국가에서도 자주 가격통제를 시도했다. 중요한 것은 매번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이다.
물가와의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3기 경제팀 수장 박재완 장관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물가를 잡겠다고 다짐했다. 물가는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주요 관심대상이었다. 'MB 물가'라는 지표까지 만들어 관심을 쏟아왔다. 그러나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냉해로 농사가 안되자 배추를 비롯한 채소값이 뛰었고 구제역으로 돼지공급이 달리자 삼겹살 가격이 쇠고기 등심가격보다 비싼 기현상까지 겪고 있다. 공급이 달릴 때 가격이 오르는 것은 임산부의 배를 아무리 복대로 둘러매도 불러오는 배를 막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름값ㆍ통신료 등 일부 아이템에서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소문에 비해 먹을 것은 적었다는 지적이다. 가격이 수상하면 원가를 들여다보려 할 것이 아니라 담합여부를 조사하고 시장구조를 경쟁적으로 만드는 쪽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유럽연합(EU)에 이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조기에 발효되도록 하는 것만큼 물가안정에 도움이 되는 것도 없다.
난방기시장에서 전기용 난방기기만 남게 된 것은 가격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할 때 어떤 재앙이 초래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다른 에너지의 가격은 치솟는데 전기가격만 묶어놓은 결과 가장 고급에너지인 전기가 가장 값싼 에너지가 된 것이다. 소비자들이 전기용 난방기를 사용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국가적으로는 에너지사용의 비효율이 커지게 된다. 전월세 상한제나 이자율제한 등의 부작용도 마찬가지다.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반값등록금 논쟁도 비슷한 데가 있다. 지난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등록금이 아니라 대학문이 지나치게 좁은 것은 문제였다. 그런데 대학문을 활짝 열어 대학진학율이 80%를 넘을 정도로 대학교육 서비스에 대해 광적인 수요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 가격인 등록금이 비싼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의 교육문제는 참으로 난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국 대학교육의 진짜 문제는 대학진학율이 너무 높다는 것과 경쟁력이 너무 낮다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른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학등록금을 반으로 낮추겠다니 표퓰리즘 경쟁도 이 정도면 기네스북 감이다.
개방·경쟁적 시장 조성이 해법
가격은 살아 움직여야 한다. 강제로 통제하면 죽은 물가가 된다. 조급하게 물가지수의 안정이라는 숫자의 환영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가격은 시장이 보내는 신호다. 가격이 오르는 것은 그 상품과 서비스를 더 생산하거나 소비를 줄이라는 것이고 내리는 것은 생산을 줄이라는 신호다. 이 과정을 통해 보유하고 있는 자원은 만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최적의 배분이 이뤄지게 된다. 그런데 만약 이 같은 신호체계가 고장 나거나 인위적인 힘에 의한 '죽은 물가'를 만들면 시장경제는 불구가 돼 더 큰 손해를 입게 된다는 것을 가격통제의 역사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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