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호수를 보듯 잔잔하다. 화려하지만 유난스러움은 덜어냈다. 지난주 말 폭스바겐의 최고급 세단인 ‘페이톤’의 새 모델을 대면한 첫 느낌이다. 정확한 차명은 ‘페이톤 V8 4.2롱휠베이스(LWBㆍ사진)’. 페이톤을 보고 있자면 마치 신고전주의 양식의 조각상을 보는 듯하다. 요즘 많은 고급 세단들의 디자인이 지나친 기교와 호사스러움에 빠져 금세 질려버리는 경향이 있다면 페이톤의 디자인은 엄격한 절제를 통해 오히려 은은한 격조를 드러낸다. 외관은 전반적으로 단순하고 명쾌한 디자인으로 간결한 느낌을 살리면서도 뒷면에는 의도적으로 과장된 느낌의 커다란 엠블렘을 달아 단조로움을 피했다. 차문을 열자 탄성이 저절로 터져나온다. 고급 가죽으로 질감을 살린 12단계의 전동식 시트가 금세라도 파묻혀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킨다. 센터페이시아는 호두나무 빛깔의 우드 장식에 크롬처리를 덧붙여 한껏 멋스러움이 살아난다. 한 땀 한 땀 세밀하게 처리된 내장의 마감처리에서는 차체의 대부분을 사람이 직접 만드는 수제 자동차만의 정성이 느껴진다. 차체를 리무진급으로 길게 늘인 ‘롱휠베이스’ 모델인 만큼 뒷좌석에 탑승할 귀빈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뒷좌석이 각각 비행기 일등석처럼 분리돼 있는 점과 전후좌우의 시트에서 각각 따로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독립 냉ㆍ난방시스템, 뒷좌석 전용 TVㆍ오디오 장치 등은 뒷좌석의 VIP 승객을 위한 숨은 배려다. 이제는 주행에 나설 차례. 키를 꽂지 않고 버튼만 눌러도 시동이 자동으로 켜진다. 일단 첫 주행구간은 경사와 굴곡이 많은 남산길로 정해보았다. 가속페달을 살짝 밟았는데도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을 부드럽게 오른다. 중간 중간 급가속을 해봤는데도 마치 얼음 위를 미끌어지듯 주행감이 부드럽다. 일부 수입 세단이 탑승자의 몸이 뒤로 젖혀질 정도로 지나친 순간 가속력으로 불만을 사는 데 비해 페이톤은 안락함에 초점을 맞춰 부드럽게 튜닝된 덕택이다. 급커브가 많은 코스임에도 속도를 크게 줄일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앞ㆍ뒤 바퀴의 구동력을 독립적으로 제어해주는 똑똑한 4륜 구동시스템(4모션 시스템)은 급격한 코너링에서도 주행코스 이탈을 막아준다. 남산을 지나 강변북로를 거친 뒤 인천공항고속도로로 들어서면서 속도를 내보았다. 묵직한 느낌과 함께 계기판 바늘이 거의 끄트머리에 닿아 있는데도 차량에 전혀 흔들림이 없다. 2~3시간의 주행시간 동안 정숙성ㆍ편의성ㆍ주행성능의 3박자를 고루 갖춘 차라는 점에 마음을 빼앗겼다. 구매자에게 더욱 매력적인 것은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가격. 물론 대당 가격은 1억2,000만원선으로 고가이기는 하지만 동급의 유럽계 수입 세단에 비하면 20~30%가량 저렴하다는 점은 페이톤만이 가진 매력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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