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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배전분할 중단 유감
입력2004-06-18 16:07:33
수정
2004.06.18 16:07:33
강기성 (사)전력경제연구회 회장
[기고] 배전분할 중단 유감
강기성 (사)전력경제연구회 회장
강기성 (사)전력경제연구회 회장
지난 17일 산업자원부가 한국전력의 배전분할을 중단한다고 발표해 충격을 주고 있다. 노사정 공동연구단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기구가 연구결과를 발표한 지 불과 3주 만에 노사정위원회 공공특위가 그 연구결과를 전면 수용하고 산자부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서둘러 기자회견을 열어 수용방침을 발표했다.
정부 정책변경 납득 어려워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온 정책을 중단하는 중차대한 결정이 적절한 여론수렴 과정도 없이 마치 사전에 짜여진 각본이 있었던 것처럼 제한된 몇몇 사람들에 의해 순식간에 이뤄졌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산자부 장관이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추진한 장본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99년부터 2년에 걸쳐 최대의 입법현안으로 떠올랐던 문제다. 99년 당시 정부는 오랜 기간 검토 끝에 전력산업을 경쟁체제로 전환하는 구조개편 계획을 수립하고 관련법안 입법을 국회에 요청했었다. 그러나 많은 의원들이 과연 전력을 거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던 터라 정부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듬해인 2000년 제16대 국회가 구성되자 정부는 국회가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보완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광범위한 의견수렴을 펼쳤다. 그 결과 국회는 11월 말께 별도의 토론회를 개최, 정부계획의 정당성 여부와 이에 대한 여론의 향배를 최종 확인한 후 관련법안을 통과시켰다. 또 법안 통과시 산업자원위원회는 정부에 추후의 구조개편 진행상황에 대한 주기적인 보고를 요청했다.
지나간 일을 이처럼 되짚어보는 이유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정당성은 이미 국회차원에서 검증된 바 있고 정책결정 역시 단순히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입법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국회가 정책결정의 마지막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사안이다.
정부가 필요에 따라 노사정 공동연구단을 구성해 구조개편 문제를 다시 검토한다든지 정부 내부에서 어떤 방안을 정부안으로 내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부안을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문제는 다르다. 구조개편 정책이 애초 국회를 통해 결정됐고 국회에서 통과시킨 법률에 의해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정책변경 역시 최종적으로는 국회를 통해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중요한 정책변경을 국회에 보고하려면 거기에 상응하는 심도 있는 검토와 광범위한 여론수렴이 사전에 이뤄져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번 시행된 정책은 사정변경이 없는 한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가급적 제도보완을 통해 해결해나가야 한다. 정책중단은 정책당국에 대한 대내외 신뢰상실은 물론이고 그만큼 새로운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에 시행 중인 정책의 중단이라는 극약처방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채택해서는 안된다.
특히 전력산업 구조개편 문제는 국내외적 관심이 집중됐던 사안으로 2000년 입법 이후에 3년 넘게 막대한 국민 혈세를 써가며 IT설비 구축 등의 일이 진행돼왔으며 전력시장에 참여하는 민간사업자도 늘어났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구조개편 정책을 변경하는 것은 결코 가볍게 처리할 사안이 아니다.
법절차 따라 국회서 결정을
우선 구조개편 정책을 중단하지 않으면 안될 명백한 사유가 제시돼야 하며 그 사유는 정책중단이 불가피할 만큼 중대한 하자여야 하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타당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정책중단시 야기되는 문제에 대해서도 철저한 방책이 제시돼야 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철저한 검토 없이 시행된 정책을 쉽사리 바꾼다면 누가 정책당국을 믿고 따르겠는가.
최근 정부의 峠Ⅸ?보면 이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배전분할시 가격급등과 공급불안의 우려가 있다는 것이 배전분할 중단의 이유로 언급됐을 뿐 실증적 근거는 전혀 제시돼 있지 않다. 가격급등이나 공급불안 문제는 2000년 구조개편법안 입법 당시에도 거론된 문제다. 당시 적절한 보완대책을 수립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변했던 정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국민대표로 구성된 국회에서 의결된 중요정책을 아무런 사전협의 없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잘못된 정책은 그 피해가 더 심해지기 전에 가급적 빨리 바꾸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러한 조치는 잘못된 정책이라는 명백하고 타당한 증거의 제시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입력시간 : 2004-06-1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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