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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62> 자동화가 낳은 삶의 수동화


우리는 정말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요?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이끌리는 삶을 살고 있을까요? 기자가 지하철을 타고 출근길에 동승한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대부분 스마트폰을 보고 있습니다. 모바일 기기를 통해 메일을 체크하거나, 친구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거나, 전화를 할 수도 있겠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영상을 시청하고 뉴스를 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주체적으로 콘텐츠를 선택해서 향유하는 것 이상으로 누군가의 추천에 의해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요즘은 사용자가 원할 만한 정보들을 알아서 추천해 주는 디지털 비서 기술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구글 나우 같은 서비스는 과거 컴퓨터나 모바일 폰 등을 통해 검색했던 정보들을 잘 모아서, ‘사용자가 원할 것 같은’ 새로운 콘텐츠를 추천해 줍니다. 사람이 학습을 하듯, 기계도 학습을 한다는 원리 하에 만들어진 알고리즘 기반의 의사결정 시스템입니다. 처음 해당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은 너무나도 친절한 기계의 배려에 깜짝 놀라거나 흥미를 느낍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가 추천해 준 내용을 따라 정보들을 소비하고, 그날그날의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 보면 모바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개개인의 삶은, 스스로 그 방향을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기계가 이끄는 대로 흘러갑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자동화가 낳은, 수동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자동화 기반 시스템의 특징은 사용자가 그 기술을 편하게 느낄 때에는 지속적으로 활용하지만, 자기가 향유할 수 있는 양 이상의 정보가 유입되었을 때에는 스트레스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또 사용자의 의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자동화일 경우에도 짜증을 유발합니다. 음성 인식으로 검색을 도와주는 기능이 대표적입니다. 누군가가 ‘A‘라고 말하면, ’B’라고 알아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특별한 억양이나 사투리 등을 가진 사용자의 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때가 비일비재하죠. 그래서 온라인 데이터들을 들여다보면 유난히 음성인식시스템에 대한 짜증과 관련된 내용들이 넘쳐납니다. 쓰는 사람이 원하는 바를 아직은 완벽하게 충족하지 못하는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발전된 인공지능을 갖춘 시스템이 탑재된다 하더라도 말하는 사람의 감정과 언어 습관, 행간에 깔린 의미 등을 제대로 추론하고 자동화할 수 있는 매체가 나올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입니다.

철학자 훗설(Husserl)은 ‘판단중지’(Epoche)라는 개념을 이야기했습니다. 가끔 우리는 다양한 선입견으로 오염된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자기가 갖고 있는 기존의 경험이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동화 역시도 과거의 정보를 기반으로 굴러가는 기술입니다. 가끔은 이런 삶에 판단 중지를 위한 무언가가 필요한 건 아닐까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떠내려 갈 수도’ 있는 일상 속에서 기술을 이용하는 사람이 가끔 판단을 유보하고 자신의 생각을 할 수 있게끔 여유를 주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IT 서비스를 고민하는 사업자들은 이제 막연하게 사람들을 편하게 한다는 명분이 아니라, 더욱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사용자들에게 시간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어떤 로봇들은 자기가 학습한 사용자들의 정보를 다시 이야기해주기도 한다고 하네요.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알았던 것들’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생각해 볼 여지를 주는 셈입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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