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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기로에 선 일본 민주주의



지난 5월28일 일본의 집단자위권 법제화를 위한 안보 관련 법안을 심의하는 중의원 특별위원회 회의에서 민주당 소속의 한 여성 의원이 질문자로 나섰다. 본격적인 질문에 앞서 집단자위권 행사로 일본이 전쟁에 휘말리거나 테러 공격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취지로 3분가량 말을 이어가던 그를 향해 아베 신조 총리가 불쑥 말했다.

"빨리 질문해라."

국가 최고 지도자가 공식 석상에서 야당 국회의원에게 반말로 질문을 다그친 언행은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아베 총리는 곧바로 사과했지만 총리가 무심코 드러낸 민낯에 놀란 일본인이 적지 않았다.

이 사건은 당시 총리의 '추태'에 대한 공식 사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 말 한마디에 담긴 함의는 훨씬 심각한 것이었다. 아베 정권에서 일본이 직면한 민주주의의 위기다.

우치다 다쓰루 고베조시인대 명예교수는 최근 안보법 통과 후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아베 총리의 이 야유는 그가 국회 심의를 단지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세리머니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냈다"며 "총리가 법률을 정하고 국회가 그것을 추인하기만 한다면 한없이 '독재'에 가까운 정치체제"라고 지적했다.



19일 새벽 국회 과반을 차지하는 여당이 국민 절반 이상이 반대하는 안보 관련 법안을 통과시킨 후 일본에서는 민주주의 논의가 뜨겁다. 야당과 학계, 일부 언론은 아베 정권이 일본 민주주의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고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대규모 시위다. 청년단체 '실즈(SEALDs)'를 비롯해 그동안 정치에 거의 무관심했던 젊은이들이 '안보법안 폐지' '아베 정권 반대' '민주의 수호' 등을 외치며 연일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베의 무리수가 결국 일본인들의 민주주의 수호의식을 일깨웠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아사히신문은 최근 안보 법제 통과가 일본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라며 주권자들이 일본 정치를 뿌리부터 바꿀 것이라는 기대감에 찬 사설을 실었다. 우치다 교수는 내년 참의원 선거부터 투표연령이 만 18세 이상으로 낮아짐에 따라 '실즈'에 크게 영향을 받는 240만명의 새로운 유권자가 투표장에 나타날 것이라고 예고했다. 반(反)아베 시위는 선거에서 아베 정권에 대한 심판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물론 바람직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지금의 시위가 선거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낙관은 이르다. 일본 열도가 원자력발전소 가동 반대 시위에 뒤흔들린 2012년 일본인들은 연말 총선에서 원전 가동을 공약으로 내건 자민당에 표를 몰아줬다. 당시 집권 민주당에 대한 반발감이 그만큼 크게 작용한 탓이기는 하지만 그해 국회의사당 앞을 가득 메운 20만명의 시위대의 바람은 '아베노믹스' 앞에 맥을 못 췄다.

참의원 선거까지 남은 기간은 10개월. 아베 총리는 벌써 '경제 최우선'을 내세우며 분위기 전환을 꾀하고 있다. 오늘날 일본인들이 느끼는 정치적 위기의식이 경제 성장의 달콤한 약속에 녹아버리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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