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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칼럼/9월 7일] 신용의 독립변수

필자가 학부 경제과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데는 체이스맨해튼은행 서울지점이었다. 재학 중 공인회계사 시험을 본 덕분에 기업대출 심사 부문에서 일하게 됐는데 은행 내에서 그 부문을 '크레디트 앤드 마케팅(Credit and Marketing)'으로 불렀다. 그때가 한국에서 외국 은행들의 초창기였고 또 한국에서 '크레디트'라는 말은 아주 생소했던 터라 입행 시험 인터뷰에서 그때 총책임자로 계시던 분(후에 체이스맨해튼은행 뉴욕본점 고위직과 미국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를 거친 오인석씨)에게 이 용어가 구체적으로 무슨 말인지 여쭤봤다가 그것도 모르면서 은행에 들어오려 하느냐고 혼쭐이 난 기억이 있다. 요즘은 한국 은행들에서도 대출이라는 말 대신 여신이라는 용어를 쓰는 게 보편화해 있다. 여신은 신용을 공여한다는 의미로 은행에서 쓰는 크레디트의 제대로 된 번역이 아닌가 싶다. 비즈니스에서나 개인의 경제에서나 너무도 중요한 '크레디트(신용)'의 바탕은 무엇일까. 신용이란 신의와는 좀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신의란 정신적인 부분도 포함된 듯하지만 신용은 신의보다는 실질성과 경제성이 강한 면이 있다. 또 신용은 도덕성과는 상관관계가 높은 것 같지 않다. 신용이 있는 분들이 꼭 도덕성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한편 필자는 공자 같은 분들이라고 꼭 신용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 신용이란 종속변수의 가장 중요한 독립변수는 무엇일까. 사람들의 무엇이 그 사람의 신용이 있고 없는가를 결정하는 것일까. 아마 '시간 지키기'가 아닌가 한다. 매달 내야 하는 여러 기관의 납부를 제때 지키지 않으면 신용기록이 나빠지고 갚아야 하는 빚을 제때 갚지 않으면 신용이 떨어진다. 직장이나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도 해야 할 일을 시간을 지켜 하면 신용이 쌓이는 것이다. 결국 신용은 시간과 함수관계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은행과 경제와 회계 부문에서 사회생활, 연구활동을 하고 지내면서 필자는 인생의 아주 중요한 일에서 왜 성공과 실패가 생기고 일이 잘되고 못 되는가, 무엇이 사람을 편하게 하고 안심시키거나 불편하게 하고 불안하게 만드나를 여러 해 동안 생각했고 그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신용이 아닌가 하게 됐다. 인간의 능력이 다르고 없는 능력은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지만 신용은 능력보다는 뜻한 바 마음에 달린 면이 큰 것도 사실이다. 사업 실패나 실직으로 납부금을 연체하는 마음 아픈 경우를 빼고는 많은 경우 우리는 조그만 마음씀씀이로 신용을 쌓아갈 수 있다. 미국의 많은 기관에서 사람을 고용하기 전 그 개인의 신용조사를 꼭 하는 이유도 평소의 개인생활에서 그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게 직장의 업무수행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있나 하는 것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지금 경제의 가장 큰 문제가 신용의 과다사용으로 앞으로의 경제성장에 개인과 가계부채가 부담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각 개인의 문제가 사회경제에 너무도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개개인의 절제의 미덕이 경제를 건강하게 하는 바탕이라는 진실을 배운다. 한국 정부에서 때때로 하는 신용불량자 사면은 언뜻 보기에는 경제적 약자들에게 새로운 출발의 기회를 주는 것 같지만 젊은이들에게 책임 있는 경제적 자세를 가르치는 과정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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