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박지성 아냐" 쓴소리 직원에… 발칵
"마른 행주 쥐어짜면 찢어진다"퇴사 직원, 무한 구조조정 증권사에 돌직구사내 인터넷에 글 올려 파문
송주희기자 ssong@sed.co.kr
"직원들은 무한 체력의 박지성이 아니다. 마른 행주를 쥐어짜면 찢어진다."
한 증권사 직원이 퇴사하면서 사내 인터넷 게시판에 남긴 글이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는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 급속도로 퍼지며 파문을 일으켰다. 영업 압박과 평가 부담에 시달리던 증권맨들은 "쉬쉬하고 있을 뿐 많은 증권사 직원들이 같은 심정일 것"이라며 안타까운 반응을 보였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A증권사 문경지점의 한 대리는 이날 오전 사내 인터넷 게시판에 퇴사를 앞두고 회사에 대한 쓴소리가 담긴 글을 올렸다. "2007년 12년 주식 활황기의 끝자락에 입사해 오늘이 마지막 출근일이 되는 사람"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이 대리는 "입사 초 직원 간에 신용과 의리로 똘똘 뭉쳤던 회사에 어느 순간부터 서로 살아남기 위해 일에 찌든 얼굴만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답이 없는 회의' '발전이 아닌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회의' '260명이라는 자식들을 떠나보내며 위로의 말 한마디 없는 회사' 등 문제점을 지적한 이 대리는 "260명의 자식이 나갔지만 줄어들지 않는 임원 수"를 비판했다. 대리급 직원들은 한 달 월급의 2.5배 수익을 내며 엄청난 생산성을 보이지만 연봉 2억원 이상을 받는 임원들의 생산성은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글을 쓴 대리는 "연봉 10억원 받으시는 분들의 생산성은 얼마나 되느냐"고 반문하면서 "채찍질은 최고인 것 같다. 자식들이 힘들어하지만 아버지는 말이 없다"는 돌직구도 날렸다.
이 글은 급속도로 여의도에 퍼지며 게시 후 10분 만에 조회수가 500건을 넘길 정도로 파장이 컸다. 현재 내부 게시판에서 해당 글은 삭제된 상태다.
이 글에 대해 증권맨들은 "증권사들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감히 공론화하지 못했던 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증권사의 상반기(4~9월) 당기순이익은 6,746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1조2,404억원) 대비 반 토막이 났다. 이렇다 보니 증권사들은 지점 통폐합과 희망퇴직 실시 등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증권사 직원들의 업무 부담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다.
B증권사는 지난해 7월 12개 지점을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해당 지점 임직원과 교감 없이 일방적으로 통폐합을 밀어붙이고 직원들의 퇴사를 종용했다는 지적이 제기돼 노사 간 갈등이 빚어졌다. C증권사 역시 최근 희망퇴직을 실시하면서 업계의 '구조조정 도미노의 신호탄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수익성이 줄어들면서 웬만한 증권사 직원은 물론 임원도 영업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라며 "암묵적으로 이어지는 성과 평가와 희망퇴직이라는 이름하에 진행되는 구조조정 속에서 증권사 직원들의 스트레스도 커져가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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