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치와 문명 (장 카스타레드 지음, 뜨인돌 펴냄)<br>"물질적 사치 아닌 문화예술적 욕망으로 봐야"<br>"中·印등 브릭스 국가 명품 소비시대" 언급도
 | 4세기 마야 문명 당시 만들어진 앉아 있는 사람 모양의 향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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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프랑스 브라상푸이 지역에서는 조각상 '두건을 쓴 부인'이 발견됐다. 기원전 2만 3,000년 후기 구석기시대 작품인 이 조각상은 당시에도 인간이 자신을 꾸며 특별하게 보이고자 하는 욕구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프랑스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저자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문명의 발달은 반드시 사치를 동반해 왔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사치'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어감으로 비춰지는데, 저자는 단순히 명품이나 보석에 대한 욕구를 지칭하는 좁은 의미의 사치가 아니라 넓은 의미의 사치에 관심을 기울인다. 저자는 인간의 기본 욕구를 넘어서는 고차원적인 행위, 즉 문화예술적 욕망을 사치의 범주에 포함시키면서 문명 발달의 동력이 된 사치와 단순한 물질적 사치를 엄밀히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이 사치의 탄생이라고 본다. 기원전 2000년 무렵 함무라비 왕은 재위 기간 동안 도시에 궁궐을 세우고 성문을 모자이크로 덮었으며 최초의 법전을 제정하고 도서관까지 설립했다. 풍요로운 생활을 추구하는 이 모든 유적은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상태에 나타난 사치라는 것. 이밖에 바빌론의 정원, 이집트의 피라미드, 아테네의 판테온, 로마의 콜로세움, 프랑스의 베르사유궁 등 인류의 위대한 문명들은 모두 사치의 범주에 포함된다.
특히 문명의 전환점에선 언제나 사치가 정점에 달했다는 사실에도 주목한다. 프랑스에서는 루이 14세 시대에, 로마에서는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그리스에서는 페리클레스 시대에 문명이 화려한 꽃을 피웠으며 사치는 그 시대를 점령했다. 이 중에서도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하면서도 화려했던 로마제국은 오랜 세월에 걸친 번영과 안정 속에서 '정복자의 사치'를 누렸다. 로마 지배층은 정복을 통해 빼앗은 수많은 보석으로 독수리를 새긴 상아 왕홀과 고관 의자, 금색과 자주색으로 가장자리를 두른 가운 등 호화로운 사치를 누렸으며, 자수업자ㆍ보석세공인ㆍ염색업자ㆍ신발에 향기를 내는 사람 등 사치와 관련된 직업들이 성행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1890년을 전후해 조선에 처음으로 들어온 커피는 그 자체로 문명의 상징이었다. 커피를 최초로 마신 조선 사람이 고종이었을 정도로 당시 커피는 소수만이 누리는 특권과 사치의 상징이었다.
최근 사치 산업의 새로운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브릭스(BRICs)에 대한 저자의 특별한 언급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매주 모스크바에서는 새로운 명품 매장이 문을 열고 있으며 상하이와 베이징, 뭄바이도 곧 모스크바의 뒤를 따를 것"이라며 "이제 서양이 생산하고(유럽과 미국은 현재 명품 생산의 65%를 담당하고 있다) 서양과 일본에서 소비하는 시대를 넘어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가 소비하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구촌의 새로운 세력이 사치의 구심점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저자는 "21세기 들어서 상품은 '화려함'이라는 기준보다 '진정성'과 '가치'라는 두 가지 요소를 통해 시장의 선택을 받고 있다"며 "물질적인 풍요와 쾌락주의 시대를 통과해 온 우리에게 이제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라고 강조한다. '돈을 얼마나 썼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워졌는가'를 기준으로 사치를 판단돼야 하며 사치는 더 이상 '소유'가 아니라 '존재'라는 주장이다. 풍부한 물질 문명의 혜택 속에서 과시적인 소비에 집착했던 현대인에게 자유 의지와 자존감 회복을 통한 진정한 사치로의 회귀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주목할 만하다. 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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