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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기업 살리는 수사는 불가능한가

포스코 수사 5개월째 지지부진… 저인망·먼지털이식 관행 여전

신속·정확하게 환부만 도려내 '약'되는 기업수사 보여줄 때


얼마 전 중견 그룹 계열사의 A 대표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기획실 고위 임원이었던 그는 그룹이 경영위기에 처하자 구원투수로 차출돼 부실 계열사를 떠맡았다. 수년간의 자구노력 끝에 지금 회사는 흑자기업으로 탈바꿈한 상태다. 그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지 미뤄 짐작할 만하다. 난관을 극복한 때문인지 그의 말에는 자신감이 배어났다.

하지만 그는 10년 넘게 기업비리수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회계부정 등 그룹의 비리 의혹이 제기되면서 재무 쪽을 맡고 있던 그도 수사 선상에 올랐다고 한다. A 대표는 참고인 등 이런저런 이유로 수차례 수사당국의 호출을 받았다.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간 자신에게 쏟아졌던 의혹을 대부분 해소한 걸로 생각하지만 수사당국은 여전히 그를 놓아주지 않고 있다. A 대표는 "언제 또 부를지 몰라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A 대표와 비슷한 처지의 기업인·기업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포스코 수사를 보더라도 그렇다. 지난 3월부터 5개월간 포스코건설을 시작으로 협력업체 등 20여곳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정동화 전 부회장 등 관련자 100여명이 소환조사를 받았다. 그런데도 비리의 정점으로 지목되는 정준양 전 회장은커녕 정동화 전 부회장의 혐의 입증에도 난항을 겪고 있다. 장기간 수사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별로 없자 검찰이 치밀한 준비도 하지 않고 무작정 돌격한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일각에서 들린다.

그런데도 수사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수사팀이 "수사를 연중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니 앞으로도 많은 기업 관계자들이 검찰청사에 불려다닐 공산이 크다. "내사를 정밀하게 해서 환부만 정확히 도려내고 신속히 수사를 종결하라" "수사 대상자인 사람(기업인)과 기업을 살리는 수사를 하라"는 김진태 검찰총장의 지침이 무색할 지경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빨리 끝내주는 게 기업을 살리는 수사"라는 하소연이 나올까.

비리 기업·기업인의 범죄사실을 밝혀내 일벌백계하는 건 수사당국의 당연한 책무다. 혐의가 있으면 회장이든 누구든 잡아가 비리를 발본색원하는 게 마땅하다. 그래야 좀비 기업이 사라지고 파렴치한 기업인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렇더라도 기업비리 수사에는 원칙과 기준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달 김인호 무역협회 회장이 언급한 말에서 답을 찾아볼 수 있겠다.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수사는 확실한 근거에 입각해 최소한에 그쳐야 하고 본래 수사하고자 했던 사건의 혐의가 풀리면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기업수사가 통상 3개월을 넘기면 기업도 수사 당사자도 피로감을 느끼는 등 후유증이 적지 않다는 말이 괜히 나오지 않았을 터이다.



수사방식·관행에 대한 비판이 나오면 검찰은 저인망·먼지털이 식의 별건 수사를 지양하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기자가 법조를 취재했던 2006년 발생한 현대차 비자금 사건 수사 때도 그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도루묵이 되는 일이 허다하다. '영장 발부 범위를 벗어나 디지털 자료를 출력했다면 디지털 압수수색 전체가 무효'라는 최근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털면 나온다는 식의 수사관행이 사라졌다고 선뜻 장담하기 힘들 것이다. 광범위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잡은 기업들의 약점을 두고두고 이용한다는 불만이 아직도 여기저기서 나오는 까닭이다.

경제·사회적 여건이 급변해 이전과 같은 수사방식·관행에 기대서는 성과를 내기 더욱 어려워진 시대가 됐다. 수사환경 변화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얘기다. 신속·정확한 '외과수술식 집도'를 통해 기업 활동 지장을 최소화하고 미래에 '약(藥)'이 되는 수사를 보여줄 때가 이제는 되지 않았는가. 그러면 기업들도 수긍하고 국민들은 기꺼이 박수를 칠 것이다. 그 시기가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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