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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과 소용돌이를 넘자

캐나다의 교육학 교수인 로렌스 피터박사는 “계층사회에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지위가 상응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들에 의해 채워지는 경향이 있다. 일은 아직 무능한 수준에 도달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수행된다”는 피터의 법칙을 내 놓았다. 무능한 수준에 이를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었거나 충분한 계급이 없는 경우에는 그 계층사회의 정상에 도달해도 유능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능한 사람들이 다른 계층사회로, 예를 들면 최고경영자나 학자가 정치인이나 관료로 변신하여 이전의 계층사회에서는 이를 수 없었던 무능한 수준에 도달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라는 사람들 중에도 실제로 무능한 수준에 도달한 사람이 적지 않아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무능의 종착역에 도달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다양하다. 가정주부로서 무능한 수준에 도달한 부인들 사이에는 전화 애호 증이 빈번하며, 최고 경영자들에게는 “나를 정말로 이해해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등의 자기연민 증상이 종종 나온다. 피터는 또한 진입장벽이 초기에 있을수록 조직사회의 효율성이 상승한다고 주장하였다. 대학입시가 유일한 진입장벽이 되어 있는 우리 교육제도나 고시제도를 평가할 때 고려해야 할 통찰력 있는 관찰이다. 또한 그는 조직을 리더그룹과 구성원그룹으로 구획할 수 있고 리더그룹에 새로운 인물을 외부에서 영입할 수 있으면 각 그룹에서 무능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의 숫자가 최소화되기 때문에 무(無)계급사회나 평등주의사회보다 높은 효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내 놓았다. 평등의식이 지배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겠지만 그 의미를 음미해 볼 만 하다. 아무튼 우리사회의 중요한 자리를 무능한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최고의 인재를 모아 최선의 노력을 다해도 감당하기 힘든 세계화 시대의 무한 경쟁을 함량 미달의 인재로 대응할 만한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한편 격동기 한국에서 주한 미국대사관 문정관을 역임한 그레고리 핸더슨은 1968년 출간된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에서 동질성과 중앙집중성을 특징으로 한 한국사회를 개인ㆍ가족ㆍ파벌과 중앙권력간에 중간집단이 존재하지 않는 대중사회로 정의했다. 그는 강한 동질성으로 가치관, 종교관, 이념적 분열이나 정책적 차이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정치집단은 이익이나 이념의 추구보다는 철저하게 통치권력에 대한 접근수단으로 형성되었다고 보았다. 그 결과 한국정치의 모습은 중앙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하여 사회의 모든 에너지가 중앙으로 몰려드는 강력한 소용돌이(vortex)를 닮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정치는 당파성, 개인 중심, 기회주의 성향을 보이면서 합리적 타협의 기초를 결여하고, 국회ㆍ정당 및 권력기구에 자파의 구성원을 들여보내는 지위쟁탈전에 몰두하였으며, 핵심적인 활동내용은 이슈가 아니라 권력에 있었고 타협과 양보보다는 투쟁이 특색을 이루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의 문제는 경험의 동질성ㆍ중앙집권화 및 통일성에 있기 때문에 다원사회와 분권화를 통하여 정치개혁을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그의 관찰과 분석은 35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해 보인다. IMF외환위기가 촉발한 기존 경제운용시스템의 붕괴와 함께 정치ㆍ사회분야에서도 중대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주류집단의 지지를 받지 못한 대통령이 연달아 당선되었고, 중앙권력의 강력한 통제력이 국제금융기관ㆍ시민단체ㆍ노동조합ㆍ지방자치단체 등에 의하여 잠식당하고 있으며, N세대가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하고 있다. 정치부패에 대한 사회적 비판의 결과 종전의 체제에서는 등장할 수 없었던 인사들이 주요 정당의 대표로 선임되고 있다. 국정의 주안점도 지역균형발전으로 이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종착역이 어디가 될 것인가에 대한 엄격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 정도만 하면 10년 이내에 국민소득 2만달러도 달성하고 동북아의 중심국가도 될 수 있는 것인가. 어림도 없다. 그렇게 만만한 세상이 아닌 것이다. 문명사적인 대변화에 걸 맞는 발상의 대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일섭 이화여자대학교 부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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