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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10월 30일] '붉은 여왕의 역설'과 금융감독

"이상해요. 붉은 여왕님. 아직 제자리잖아요. 제가 살던 세상에선 이렇게 달리면 다른 어딘가로 가는데요." 한참을 뛰다 지친 앨리스가 물었다. 그러자 카드의 붉은 여왕이 말한다. "여기선 제자리에 있고 싶다면 계속 달려야 한단다." 영국의 동화 작가 루이스 캐럴이 쓴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한 토막을 짧게 각색해 보았다. 열심히 뛰는데도 겨우 현상유지라니 동화라고 하기에는 참으로 가혹한 역설이다. 이번에는 장면을 바꿔보자. 국내 굴지의 한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사무실이다. 최근 기자와 만난 그가 한마디 던진다. "10년 전에 비하면 우리 금융산업도 많이 발전했지요.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많이 부족해요. 시장은 계속 진화하고 있잖아요. 그런데도 우리 금융사들은 남의 상품을 베끼는 수준이에요. 글로벌 리스크 매니지먼트 수준도 초보단계에요." 그의 말을 듣고 있자면 붉은 여왕의 역설이 동화 속 이야기만은 아님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우리의 금융사들은 10여년간 외환위기와 카드대란, 그리고 요즘의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르기까지 전례가 없는 격동의 시기를 견뎌내며 한층 진화해왔다. 이 와중에 제도적으로는 금융사 간 업종 장벽이 허물어졌으며 시장에서는 정보통신, 유통산업과 금융산업 간 제휴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그런데도 이 백전노장의 경영인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한다. 붉은 여왕도 말한다. "다른 곳으로 가려면 적어도 두 배는 더 빨리 뛰어야 하지"라고. 그만큼 앞으로 할 일이 태산인 우리 금융사들은 걱정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투자비용이 드는데 금융 당국은 자꾸 모험하지 말라고, 수익도 내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고 말이다. 정부로서는 퍼주기식으로라도 은행을 쥐어짜서 친서민 정책을 편다고 광고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쥐어짜는 동안 우리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줄어들고 스스로 자본을 확충하기 힘든 일부 금융사들은 또다시 외국 투자자들에게 기대야 할지 모른다. 어쩌면 현재의 금융정책은 금융산업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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