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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12월 29일] 자일 파티

[동십자각/12월 29일] 자일 파티 한기석 성장기업부 차장 hanks@sed.co.kr '자일을 끊어야 하나… 그 순간 아주 짧게 그런 생각이 휙 스치고 지나갔다. 툭 칼을 대는 순간 체중이 실려 팽팽해져 있는 자일은 쉽게 끊어질 것이다.' 산악인 박정헌씨가 쓴 ‘끈’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는 지난 2005년 1월 후배 최강식씨와 단 둘이 히말라야의 촐라체봉을 올랐다. 정상에 오른 뒤 하산하던 중 최씨가 갑자기 크레바스(빙하에 균열이 생겨 갈라진 틈새)에 빠져 25미터 아래로 떨어졌다. 불러도 불러도 대답은 없고 탈진한 그마저도 이제 자일로 연결된 최씨의 무게에 이끌려 크레바스 구멍 속으로 곤두박질칠 판이었다. 최근 박씨의 촐라체봉 등정 강연을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강연이 끝난 뒤 정작 궁금했던 바로 그 대목을 물었다. 피켈에만 의지해 한 사람을 붙들고 있던 그때, 더 이상 그대로 있다가는 자기도 죽을 수 있는 그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물론 자일을 끊을 생각을 했죠. 그런데 나중에 혼자 살아 돌아가 강식이 부모님을 만나 할 말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그는 결국 자일을 끊는 대신 끌어당겼고 최씨는 끝내 크레바스에서 빠져나왔다. 크레바스 추락으로 최씨는 양 발목이 부러졌고 박씨는 갈비뼈가 으스러지고 안경이 깨져 앞을 보지 못했지만 둘은 서로의 눈이 되고 다리가 돼 생환에 성공했다. 요즘 공단에 가서 듣는 중소기업들의 얘기는 살벌하다. 사업 구조조정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됐고 지금은 비정규직에 이어 정규직까지 인력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이 엄동설한에 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회사는 한 사람의 인생이다.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는 사람이 회사 동료다. 산악인들은 자일로 묶어 함께 등산하는 동료를 ‘자일 파티’라고 부른다. 회사 사람들도 위에서 아래까지 서로를 마음의 자일로 묶고 있는 자일 파티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자일을 끊으면 아래는 바로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는다. 박정헌씨는 자신이 죽기 직전까지 후배를 기다려줬다. 물론 구조조정은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씩만 더 버티면 함께 살 기회를 모색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자일을 끊을 때가 아닌 듯하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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