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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苦)

최근 20, 30대의 절반이 이민을 가고 싶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빈부갈등, 금전만능, 부정부패 등이 싫어 이 땅의 젊은이들이 탈(脫) 한국을 꿈꾸고 있다는 것.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같은 아픔은 비단 이 땅, 이 시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민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40대 이상의 중년이라고 해서 다를 것 없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무엇인가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인데, 혹자는 이를 만성적 경제 불안과 한국적 정치 혐오에서 찾는다. 사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젊은이들은 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한 스트레스에 장기간 시달려왔다. 취업난이 극심해 `高4, 大5`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간판`있는 대학에 가기 위해 재수를 필수 코스로 생각하며, 취업상 유리한 학점을 따기 위해 졸업을 연기하면서까지 재수강을 한다는 것. 특히 사오정(45세가 정년이라는 의미)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중년의 퇴출 공포증 역시 극한 상태에 와 있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다시 시작해 보자는 분위기라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만성적 경제 불안이 엮어내는 삶의 피곤함이 이 땅에 대한 애착의 고리마저 끊어 버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한국적 정치 혐오도 범인으로 꼽힌다. 정치 혐오야 비단 우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한국적`이란 수사가 붙으면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정치란 상대가 있다. 따라서 정쟁은 피할 수 없는 산물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정치에는 대화와 타협, 혹은 협상이라는 용어가 실종됐을 정도로 독선이 난무하고 있다. 요즘 들어 우리 주변에서는 `끼리 끼리` 문화를 대변하는 코드(code)와 안티(anti-)라는 말의 사용 빈도가 급증하고 있으며, 정치는 물론 사회ㆍ문화ㆍ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사사건건 마찰과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개혁이라는 당위적 명제조차 피곤함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 분단이란 특수성, 이로 인한 이념적 갈등의 확산은 일상적 문제조차 좀처럼 해법을 찾기 어려운 대결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고난을 기꺼이 이겨나가게 하고, 희생을 즐거이 감수케 하며, 목표를 향해 매진케 할 수 있는 보편적 지향점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 대신 이 땅에서 살아가는 고(苦)만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느낌이다. <정구영(국제부 차장) gy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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