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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광대 자유 찾아 굿 한판 “얼쑤”

영화 '왕의 남자'


연말은 으레 그래왔듯이, 올해 역시 세밑 극장가의 화두는 ‘사이즈’다. 제작비 180억원의 ‘태풍’과 2,200억원의 대작 ‘킹콩’만으로 이미 전국 1,000개 스크린이 꽉 찬 마당에 작품성과 완성도를 논하는 건 적어도 시의와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현명한 관객들은 결코 ‘사이즈’에만 압도되지 않는다. 올 연말, ‘사이즈’에 기죽지 않을 영화 한 편이 관객들과 만난다. 바로 29일 개봉되는 영화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다. 영화는 김태웅의 연극 ‘이(爾)’를 원작으로 한다. 조선시대 연산군이 자신의 ‘이’라고까지 부르며 애지중지하던 궁중광대 공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민초들을 울리고 웃긴 광대들의 자유와 사랑이 듬뿍 묻어나는 굿 한판이다. 아름답지만 처절한 비극을 향해 질주하는 영화는 당대의 아픔을 뛰어넘어 인간의 원초적 욕망까지 건드리는 범상치 않은 작품이다. 장터를 떠도는 남사당패 장생(감우성)과 공길(이준기). 공길은 유난히 여자 같은 곱상한 외모 탓에 양반들의 노리개가 된다. 공길을 보호하려 남사당패 동료 등에 낫을 꽂은 장생은 공길과의 도망길 끝에 한양으로 향한다. “조선에서 제일 큰 판을 벌여보자”는 호기로움은 한양 장터를 넘어 구중궁궐에까지 이른다. 왕을 웃긴 이들은 조선 최초의 궁중광대가 된다. 화려하기만 한 궁중 생활. 그러나 자유를 갈망하는 광대에게 궁궐 생활은 비극의 씨앗이 된다. 영화의 포인트는 자유에 있다. 모든 걸 다 가졌으나 자유와 사랑만은 갖지 못한 폭군 연산(정진영), 그리고 자유와 사랑만을 가졌던 광대 장생. 끝없이 대비되는 이들은 서로의 것을 탐하지만 끝내 이뤄질 수 없는 욕망 앞에 모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다. 영화는 2시간 내내 시원한 굿판을 벌인다. 신명나게 울리는 풍악소리와 함께 놀아 제끼는 광대들의 익살과 해악은 실제 놀이판처럼 관객을 웃기고 흥분시킨다. 자유로움이 뚝뚝 묻어나는 그들의 놀이는 단순한 ‘디테일의 완성’ 수준을 뛰어넘는다. 가장 전형적으로 전락하기 쉬운 사극을 택했으면서도 인간존재의 본질을 찾아낸 감독의 모험은 성공적이다. 연극을 즐기지 않는 관객이라도 이 영화를 보면 ‘연극적이다’라는 말이 무엇인지 단박에 알 만큼 곳곳에 연극의 냄새가 배어 있다. 그 연극적 요소가 그리 어색하지 않게 다가오는 건 분명 원작의 탄탄한 힘에 빚을 지고 있다. ‘살인의 추억’ ‘웰컴 투 동막골’ ‘박수칠 때 떠나라’ 등 완성도 높은 연극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치밀한 구성력은 이 영화에서 역시 돋보인다. 올해 극장가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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