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중보건의였던 남편(정형외과 의사)따라 보냈던 전남 진도에서의 외진 생활이 헝겊인형의 매력에 빠져든 계기가 됐죠." 정문영(36) 초록인형연구소장은 약사출신으로 인형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헝겊과 솜, 바늘과 실 등 몇 개의 핵심 재료만으로 구체적인 표정과 인체비례가 정확하게 적용된 정교한 인형을 만들어 냈을 때의 희열이 작품활동에 전념하게 하는 원동력이었어요" 헝겊을 주재료로 쓰지만 봉제인형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봉제인형이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이라면 초록인형은 작가가 수개월에 걸쳐 바늘조각기법을 통해 한땀 한땀 모두 수제작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는 게 그녀의 설명. 초록인형 하나하나가 전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작품'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 소장은 국내에 '초록인형'이라는 장르를 만든 주인공 중 한 명으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2000년 홈페이지(www.adoll.net)를 첫 오픈해 제작노하우를 모두 공개하면서 국내 초록인형 작가들의 산실인 '돌메이트(doll mate)'라는 동호회가 만들어졌고, 봉제인형과 차별화를 꾀하는 취지로 만든 '초록인형'이라는 개념도 그때 나왔다. 정 소장 작품의 예술성은 국제시장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상황. 2004년 독일에서 열린 국제인형축제 출품작이 '청소년모습표현부문'과 '미니어처인형부문'에서 각각 대상을 받았다. 올 5월에는 2004년~2005년 수상작가들만 참가한 이 대회에서 '마스크를 든 늙은 남자'로 최고의 작품상을 수상했고, 이 인형은 독일 현지 '산업장난감미술박물관'에 영구 소장물로 결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그는 "더 많은 국제활동, 후학 양성, 전용 갤러리 설립 등을 추진하겠다"며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최근 한국화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더 예술적인 작품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욕의 발로다. 전문가들은 그녀 작품의 특징으로 따뜻하고 행복한 표정묘사를 꼽는다. 세아이 엄마라는 환경도 작용하는 듯 했다. 정 소장은 오는 23일부터 내년 1월 1일까지 10일간 일정으로 서울 COEX에서 열리는 '세계인형대축제'에 각별한 기대를 갖고 있다고 했다. "국내서 드문 대형 인형축제라는 점에서 인형인들이 구심점이 되는 큰 장으로 자리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이 행사에 21명의 초록인형 전문작가들과 함께 그간 공들인 작품들을 한꺼번에 공개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