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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호국인물’ 박서 장군

전쟁기념관은 고려시대 몽골 침략군을 격퇴하고 귀주성을 지킨 박서(朴犀) 장군을 2010년 8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고려시대 호부상서를 지낸 박인석의 아들인 박서 장군은 1231년(고종 18년)에 서북면병마사로 부임했다. 그해 8월 몽골군이 20만 대군으로 고려를 침략해 파죽지세로 함신진, 용주, 철주 등 요충지를 공략하고 9월에 귀주성으로 밀어닥치자 박서 장군은 삭주분도장군 김중온, 정주분도장군 김경손 등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귀주성으로 집결했다. 몽골군은 성을 몇 겹으로 포위한 채 밤낮으로 공격했으나 박서 장군은 그때마다 이를 격퇴했다. 이에 몽골군은 고려군의 기세를 당하지 못하고 일단 퇴각했으나 서북지방의 군사적 요충지인 귀주성을 포기할 수 없어 다시 공격해 왔다. 몽골군은 우세한 병력을 이용해 온갖 무기와 전술로 4개월에 걸쳐 끊임없이 공격해 왔으나 박서 장군과 고려군은 불굴의 항쟁으로 몽골군의 공략을 분쇄했다. 몽골군은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결국 퇴각했는데 당시 70세에 가까운 몽골 장수가 "내가 소년시절부터 수십년간 전투에 참여했지만 이처럼 맹공을 받고도 끝까지 항복하지 않은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이 성을 지키는 장수들은 훗날 장상(將相)의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1232년 1월에는 고종이 후군지병마사 최림수, 감찰어사 민희를 파견해 “조정에서 이미 회안공을 파견해 몽골군과 강화했고 우리 군도 모두 항복했으니 그만 싸움을 그치고 나와서 항복하라”고 권유했으나 박서 장군은 이를 거절했다. 이에 민희가 박 장군의 고집에 격분해 칼로 제 목을 찌르려고 하고 최림수가 다시 타이르니 그제야 박서 장군도 끝내 왕명을 어길 수 없어 항복했다. 그 뒤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죽주에 머물렀다. 오는 8월5일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선 종중과 유관단체 주요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박서 장군을 추모하는 현양 행사가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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