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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사설/8월 4일] 아키노의 유산

월스트리트저널 8월 3일자

스스로를 ‘평범한 주부’라고 칭해오던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이 지난 토요일 76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생전의 그녀가 가졌던 강한 신념은 ‘개인의 자유는 기본적 권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남편인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 상원의원이 1983년 암살당하자 남편의 뒤를 이어 반독재 운동에 나섰다. 그녀가 보여준 용기는 당시 한국ㆍ동유럽ㆍ남미 등지의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며 아직도 억압상태에 있는 이란과 쿠바 민중들에게 힘이 된다.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1970년대에 공산주의 위협을 내세우며 계엄령을 선포, 대통령 임기를 연장시켰다. 마르코스는 정적인 베니그노 아키노 의원을 감옥에 수감시켰지만 카터 미국 행정부의 압박 때문에 1980년에 다시 미국으로 추방했다. 아키노는 3년 후 필리핀으로 돌아오게 됐지만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저격당했다. 이 사건으로 필리핀 전역에서 반정부 항쟁이 불같이 일었으며 보수적인 가톨릭 교회와 재계까지도 동참했다. 마르코스가 1986년 조기 대선 요구를 받아들이자 코라손 아키노는 분열됐던 반독재 세력을 규합해 마르코스에게 대항했다. 아키노는 마르코스가 투표결과를 조작한 탓에 선거에서 패배하자 평화적인 ‘피플 파워’ 운동을 전개, 수도 마닐라를 시위의 물결로 뒤덮으며 최근 이란 시위와 같은 세계인의 관심을 끌어냈다. 마르코스는 강경 진압을 외쳤지만 고위 군관료들에게 제지당하자 부인과 하와이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퇴진에는 레이건 정부의 경고가 큰 몫을 했으며 필리핀의 다양한 시민사회 계층과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언론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코라손 아키노는 대통령 재임시절 군부의 계속되는 쿠데타 시도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민주주의의 토대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키노는 대통령 임기를 6년 단임으로 제한하는 새로운 헌법을 통과시켰고 선거를 통해 당선된 피델 라모스에게 민주적으로 권력을 이양했다. 반면 경제개혁 시도는 정치만큼 성공적이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필리핀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몹시 불안정하다. 특정 정치인이나 가문들 사이의 반목은 언제든 필리핀을 혼돈으로 이끌 요소다. 현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대통령도 내년에 종료되는 임기를 연장시킬 방법을 찾고 있다. 필리핀인들이 아키노의 용기로 물려받은 유산을 지키려면 헌법에 의거해 평화롭게 권력을 이양시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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