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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또박또박, 악랄하게’

LG카드발 금융위기가 주는 교훈은 금융산업은 `뛰면 죽는다`는 것이다. `천천히 또박또박, 하지만 악랄하게 전진해야` 살아남는다는 게 절절한 현실이다. IMF 구제금융, 바이코리아 펀드, 코스닥 광풍 등 우리 금융사에 족적을 남겼던 사건들은 모두 숫자가 비이성적으로 불어나면서 시작됐다. IMF 구제금융을 직접적으로 촉발한 원인은 종금사다. 6개에 불과했던 종금사는 재벌들이 가세하면서 순식간에 수십개로 불어났다. 떼돈 버는 수법은 외국은행에서 싼 이자로 단기자금을 빌려온 뒤 타이ㆍ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국가에 다시 대출해서 이자를 따먹는 역외금융 방식이었다. 한창 돈맛에 취해 있을 때 금융위기가 아시아국가를 덮쳤다. 이들로부터 돈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외국은행들이 종금사들로부터 원금을 속속 회수해가자 우리는 유동성 위기로 몰렸다. 현대투자신탁과 현대증권, 그리고 현대그룹까지 위기에 부딪친 것도 `건설인`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바이코리아 펀드에서 시작됐다. 이 전 회장은 노가다와 돌관(突貫)정신을 십분 발휘해 마치 도로를 내듯 밀어붙이기 식으로 자금을 모집했다. 단기간에 거래소시장 규모에 성장했던 코스닥의 몰락도 보수적인 접근이 부재했던 까닭이라는 게 금융전문가들의 분석이다. LG카드가 LG그룹의 최고 회사로 부각되고 그룹 사장단회의에서 LG카드 사장은 상석에, 삼성카드 사장은 말석에 앉는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불과 엊그제다. LG카드 사태가 확대되자 감사원이 사태의 전말을 캐 책임자를 문책하겠다고 하지만 기대난망이다. 정책은 두 갈래 길에서 취하는 끝없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카드정책이 당시 상황에서는 최적의 선택일 수도 있었다. IMF 구제금융 직후 이뤄졌던 정책감사가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한 것도 정책의 이런 미묘함 때문이다. 카드사태의 본질은 금융시장에서 `야생마`가 뛰면 일 난다는 과거의 사례들을 그렇게 복기(復棋)했건만 달콤한 현실 속에서 관료나, 국민이나 모두 이를 잊고 말았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맞다. 올해도 한국투자공사(KIC), 주택금융공사, 토종자본 펀드 등 굵직한 현안들이 대기 중이다. 금융정책 관료에게 한 가지만 잊지 말자고 당부하고 싶다. `천천히 또박또박, 하지만 악랄하게 전진해야 살아남는다`는 한 배우의 말이다. <정승량기자 s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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