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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강남 사람

조광권 <서울시 교통연수원장ㆍ서울시립대 겸임교수>

나는 지금의 대학로 인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와 어린시절을 복개되기 전의 서울대학 주변 개천가에서 뛰놀고 자랐다. 부모님은 그 시절 서울사람 대부분들이 그러했듯이 좀더 나은 주거환경을 찾아 여러번 이사를 하셨다. 그래서 나는 청량리 밖의 동대문구 휘경동에서 중ㆍ고등학교와 대학시절을, 그리고 장가가서 독립하기 전까지의 청년시절은 성북구 정릉동에서 보냈다. 중산층 대표하는 집단 문필 활동이 본업이셨고 추위를 많이 타시던 선친으로서는 정릉의 보일러 시설을 갖춘 집이 평생에 걸쳐 마련한 최고, 최후의 경제적 성과이기도 했다. 내가 장가를 가서 독립된 경제적 활동을 하게 되자 부모님은 강남 반포의 작은 아파트를 하나 사주셨다. 그때의 강남은 지금처럼 살기 좋은 곳이 아니었고 도심의 직장에서 멀리 떨어진 교통이 불편하고 비만 오면 장화가 필요한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청운의 꿈을 꾸고 있는 젊은 부부였기에 그러한 것을 감수하고 부모님 곁을 떠난 것이었다. 이것이 뿌리가 돼 나와 우리 가족은 자연스럽게 강남이 우리의 생활 근거지가 됐고 우리 경제의 급성장 과정 속에서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여러번의 이사를 거쳐 남에게 신세지지 않을 만한 경제적 부도 축적할 수 있었다. 그렇게 30여년을 지내다 보니 어느덧 나와 우리 가족은 현 정권으로부터 문제의 대상으로 지목된 소위 대표적 강남사람이 됐다. 그러나 나의 어머님과 동생 식구들은 여전히 정릉에서 살고 있고 나는 수시로 어머니를 뵈러 정릉에 간다. 이는 내 개인의 생활사이지만 또한 대부분 많은 강남사람들의 역사일 것이다. 내 주위를 둘러봐도 대부분의 강남사람들은 우리 시대를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내가 지금 강남에서 크게 어려움 없이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크게 투기를 한 것도 아니고 정릉에 사는 어머니나 동생 식구들보다 크게 유족한 것도 아니다. 또 어머니나 동생 식구들이 강남에 사는 우리 식구들을 크게 부러워하지도 않는 것 같고 우리 식구들도 정릉에 비해 우리가 크게 잘 먹고산다고 느끼지도 않는 것 같다. 다만 강남은 새로 개발된 도시이기 때문에 당연히 길도 넓고 각종 편의시설이 더 많은 것은 사실이다. 강북이 오래된 옛 도시이기 때문에 당연히 길도 좁고 각종 생활시설이 부족한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강북에는 강남이 갖지 못한 우리 고유의 역사ㆍ문화 흔적이 산재해 있고 북한산ㆍ도봉산 등 우리의 아름다운 산수가 보존돼 아직도 우리를 포근히 감싸고 있다. 나와 비슷하게 개발시대를 열심히 살았던 연배들이 비슷한 연유로 강남에 많이 살고 있고 이들은 사실상 우리나라의 중산층을 대표하는 집단이 돼 있는 것이다. 이 집단은 결코 배타적ㆍ독립적 존재가 아니다. 이들은 여러 가지로 강북 주민들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의 중추신경과 연결돼 있고 현대 자본주의사회를 특징짓는 각종 정보와 자본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사회는 그들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포용하고 그들이 자랑스럽게 국가와 국민 전체를 위해 자신들이 축적해놓은 부와 고급 정보를 자진해서 풀어놓도록 유도해야 한다. 현실을 외면한 도덕적 비난이나 물가와 소득증가를 도외시한 과도한 강제적 과세권 행사로는 이 집단을 점점 해외 도피형의 방관자로 만들 따름이다. 단점보다 장점 인정해야 현 정권은 논리 정연한 국정 목표와 우월한 도덕적 자부심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번번히 현실 정책의 집행에 실패하는 사유가 어디 있었는지를 이제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현실적으로 동맥의 역할을 하고 있는 강남사람들을 애써 부정하는 시각 때문이라고 본다. 여러 가지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를 이만큼 발전시켜온 강남사람들의 단점보다도 장점을 인정해주는 시각을 가질 때에 비로소 현 정권의 정책 실패를 만회할 실마리가 풀릴 것이고 현 정부가 염원하는 사회통합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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