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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4월11일] <1367> 매카서 & 양모산업


20억달러. 호주의 자난해 양모 수출액이다. 세계시장의 25%를 점하는 부동의 1위. 유형지였던 호주가 낙농ㆍ산업국가로 변모한 기반도 양모산업에서 나왔다. 호주 양모산업을 키운 인물은 존 매카서(John Macarthur). 무일푼에서 호주 최대 부호로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성장의 기반은 군대. 1782년(16세) 향토부대의 견습사관으로 시작해 전역과 정식군대 편입을 거쳐 1789년 호주 파견 기회를 잡았다. 보급과 구매업무를 담당했던 그는 거저 받은 광대한 토지에 죄수들을 동원해 농사를 짓고 농산물을 군대에 팔아 재산을 불렸다. 최대 소득원은 럼주 밀매. 죄수들이 밥보다 좋아했다는 럼주의 매매를 독점해 총독 이상의 권력을 휘둘렀다. 전역(1796년)한 뒤에도 영향력은 여전해 장교단의 투기와 부정을 파헤치려는 역대 총독들과 갈등을 빚었다. 총독 대리인과의 결투로 영국에 소환 당한 뒤 귀국길에 그는 스페인 원산 개량종 메리노 7마리를 들여와 호주 곳곳에 양떼를 퍼뜨렸다. 1808년에는 군대의 럼주 독점권을 제한하려는 총독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켜 8년을 영국에서 지냈지만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양모 덕분이다.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으로 최대 양모 생산국이던 스페인으로부터의 수입이 끊긴 상태에서 호주산 양모는 영국 모직산업의 생명줄이었다. 귀국 후 호주은행 설립을 주도하고 자치의회 의원에도 뽑혔던 그가 68세로 사망(1834년 4월11일)할 무렵 호주는 세계적인 양모 생산지의 지위를 굳혔다. 매카서의 흔적은 호주 2달러짜리 구권지폐에 남아 있다. 매카서가 영국에 두 차례 머물 동안 농장을 지키고 키워냈던 아내 엘리자베스도 5달러짜리 동전의 뒷면에 올랐다. 뒤가 좀 구리지만 매카서 부부의 손끝에서 현대 양모산업이 태동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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