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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첫돌 못보고…결혼 앞두고…
입력2003-09-15 00:00:00
수정
2003.09.15 00:00:00
“그토록 사랑하던 아들 첫 돌도 보지 못하고 이렇게 허무하게 눈을 감다니….” “새하얀 드레스를 입혀주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가다니 내 딸아….” 14일 경남 마산시 해운동 해운프라자 건물 지하에서 수몰된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마산시 합성동 마산 삼성병원은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이어지면서 온종일 울음 바다를 이뤘다.
해운프라자 지하3층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던 박상진(34ㆍ경남 창원시 상남동)씨는 손님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노래방으로 돌아갔다가 변을 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 가정형편 때문에 추석연휴도 잊은 채 업소 문을 연 박씨는 12일 밤 9시께 태풍 때문에 빌딩내로 바닷물이 밀려들자 빌딩 관리인 등 5,6명과 함께 주차장 입구 등에 모래주머니를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태풍의 위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박씨는 “손님들을 대피시켜야겠다”며 지하3층 업소로 뛰어내려갔다. 동생 상철(33)씨는 “대여섯차례 건 전화가 연결되지 않다 마지막에 이뤄진 통화에서 `손님을 대피시킨 뒤 문을 잠그고 가겠다`던 형님의 마지막 말이 아직도 귓전을 울린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부인 김임숙(30)씨는 “다섯살난 딸 소윤이와 12월 첫 돌을 앞두고 있던 효찬이를 두고 어떻게 먼저 갈 수 있느냐”며 환하게 웃고 있는 남편 박씨의 영정을 부여잡은 채 울부짖다 끝내 실신하고 말았다. 문상을 온 이웃 주민 이모(47)씨는 “유달리 가족 사랑이 넘쳐 나고 궂은 일에도 절대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며 “하늘이 원망스럽다”고 눈물을 삼켰다.
해운프라자 지하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정시현(28ㆍ마산시 월영동)씨와 서영은(23ㆍ여ㆍ서울시 동대문구)씨는 내년 5월 결혼식을 앞두고 한창 행복한 결혼생활을 설계하고 있던 연인이었다. 영어학원 기획실장으로 일하고 있던 정씨와 서울에서 컨설팅 회사에 다니고 있는 서씨는 지난 1월 미국에서 우연히 만나 알게된 뒤 사랑을 키워왔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미국에 사는 서씨는 추석 연휴를 맞아 11일 정씨를 만나기 위해 밤기차를 타고 내려왔다가 변을 당했다. 사고 당시 목격자들에 따르면 두 사람은 쏟아지는 바닷물과 빗물을 헤치고 함께 건물 지하 계단을 통해 빠져나오던 중 서씨가 원목에 맞아 실신하면서 물에 빠지자 정씨가 서씨를 구하러 들어갔다 함께 생을 마감했다.
추석 전에 미국으로 갔다가 12일 귀국하자마자 딸의 참변 소식을 들은 아버지 서의호(51ㆍ포항공대 교수)씨는 “명랑하고 밝은 성격의, 아주 멋진 맏딸이었다”며 “내년 5월에 두 사람을 결혼시킨 뒤 미국으로 함께 유학을 보낼 생각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들을 잃은 정계환(65)씨도 “비록 결혼은 하지 못했지만 둘을 함께 묻어 이승에서 못 다한 사랑을 저승에서나마 꼭 이루게 해야겠다”며 흐느꼈다.
한편 건물 지하2층 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정아영(20ㆍ마산시 회성동)씨도 친구 부탁으로 평소보다 3시간 빨리 일을 나갔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유족들의 슬픔을 더했다.
<마산=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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