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상순의 D램 고정거래가 협상 내용은 충격적이다. 가격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는 관측이 나온 지 한달 만에 가격이 20% 이상 수직 하락한 것은 수년 동안 찾을 수 없었던 현상이다. 업체들의 위기 의식도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시장에선 극단적인 감산이 없으면 1~2곳의 퇴출도 각오해야 한다는 분석이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왜 이렇게 떨어지나=D램 값이 하락 기조로 돌아선 것은 지난 7월 말.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당국이 밀수 거래를 단속하면서 현물시장이 약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고정거래가 협상의 선행 지표인 현물 값이 속절 없이 내려앉자 근근히 버티던 고정 값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8월 상순 고정거래가격은 512메가가 1.19달러에서 1.13달러로, 1기가가 2.38에서 2.25달러로 떨어졌다. 이때만해도 올림픽이 끝나 중국 당국이 단속을 풀면 조금이나마 회복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연 결과는 참혹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 현상이 심해져 각국의 내수가 곤두박질치면서 반도체 수요도 덩달아 줄어든 것. 민후식 템피스투자자문 상무는 “지금의 반도체 시장은 수급보다 심리적 요인이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수급에 심리적 불안감까지 더해지면서 9월 상순은 이른바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일컬어지던 ‘512메가-1달러, 1기가-2달러’선이 힘없이 무너졌고 하락폭도 훨씬 컸다. 업체 관계자들은 하반기에도 이 같은 약세 국면에서 쉽사리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반도체 시황이 살아나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글로벌 경기가 살아나야 하는데 이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 의견도 없지는 않다. 업체들이 대규모 감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승우 신영증권 연구원은 “현 시황을 놓아두면 대만과 독일 키몬다 등은 살아남기 힘들다”면서 “결국 감산 조치에 나설 수밖에 없고 이 경우 4ㆍ4분기 시황은 다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부 업체 퇴출 현실화하나=시장조사기관인 아이서플라이가 8월22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3ㆍ4분기 업체들의 영업이익률 전망은 처참할 정도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를 제외하면 모조리 적자이고 손실 규모도 천문학적이다. 5위권인 독일 키몬다는 손실률이 무려 73%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 조사는 D램 값이 그나마 어느 정도 버틸 때다. 현 추세라면 모조리 적자 대열에 들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전자로서도 3ㆍ4분기에 회사 전체로 영업이익 1조원 아래로 내려앉을 수 있다는 분석을 마냥 외면하기 힘든 상황이다. 관심은 이런 상황이 반도체 업계의 구조조정을 현실화하느냐 다. 시장에선 이미 1~2개 업체의 퇴출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이 최근 대만 언론을 인용해 “마이크론이 독일 인피니온의 D램 자회사인 키몬다 지분 77.5%를 인수하기로 했다”고 전한 것은 이런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반도체 업계 종사자들이 말하는 ‘아이스 에이지(ice age)’와 구조조정의 시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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