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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의 가치와 논 가치

논은 벼를 재배해 우리의 주식인 쌀을 생산하는 곳으로 수천 년 동안 조상대대로 일구고 가꾸어온 삶의 현장이다. 논은 습지이기 때문에 먹거리를 생산하는 기본적인 기능 이외에도 넓고 평탄한 저수지의 역할도 한다. 빗물을 저장해 홍수를 방지하는 효과도 우리나라의 모든 다목적 댐을 합한 것보다 크다. 논에 고인 물은 벼가 흡수하여 생장에 이용되는데 이 과정에서 공기와 물이 깨끗해지는 정화효과가 나타난다. 논에서 천천히 땅속으로 스며든 물은 맑은 지하수로 변한다. 가을철에 추수가 지나고 나면 땅에 떨어진 곡식과 벌레들을 먹으려는 철새들로 북적거린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크고 작은 저수지도 아름다운 경관 때문에 휴양과 레저의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논의 여러 가지 기능을 금액으로 환산해 합하면 연간 50조원에 이른다. 논의 쌀 생산액이 연간 10조원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논의 환경적 기능의 중요성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그래서 이미 외국에서는 논의 생산적 기능보다 환경적 기능을 높이 사고 있다. 그런데 갯벌의 가치가 논의 가치보다 100배 이상 크다는 주장이 있다. 외국 학술지인 네이처지에 실린 논문에 의하면 갯벌의 가치는 매년 1ha 당 9,900달러며 논의 가치는 92달러라는 것이다. 외국의 것이라면 무조건 맹신하던 버릇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일까? 우리나라 서해안에 많은 갯벌이 그렇게도 가치가 큰 것이란 것에는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주장이 얼마나 근거가 있는지는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네이처지의 논문은 갯벌과 논의 가치를 비교하는 논문이 절대로 아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태계를 여러 가지로 분류하고 각각이 가지는 생태적 가치를 평가하고 이를 근거로 생태계가 인간에게 주는 혜택을 금액으로 환산한 논문이다. 논문의 결론은 생태계의 가치가 매년 33조 달러 이상이라는 것이며 우리가 인식하지는 못하고 있더라도 자연의 고마움이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려는 논문이다. 갯벌이고 논이고 그 논문에 그런 비교는 전혀 없다. 그런데 논문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무리한 주장의 근거가 무엇이었는지를 짐작할 수는 있다. 논문에서는 지구의 생태계를 16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그 중에 해안습지 그리고 농경지가 있다. 해안습지의 가치는 1ha당 연간 9,990달러로 계산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타이 등의 해안에 있는 울창한 홍수림(mangrove)과 미국해안의 해안초지(tidal marsh)에서 평가된 여러 가지 경제적 가치의 평균값을 이용한 것이다. 어쩐 일인지 계산에 사용된 자료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우리나라 갯벌(tidal mudflat)에서의 평가는 전혀 찾을 수 없다. 한편 농경지의 가치는 1ha당 연간 92달러로 계산하였다. 우리나라의 논을 100만ha라고 하면 1,000억원 정도로 환산된다. 우리의 학자들이 50조원으로 평가한 것을 1,000억 원이라고 평가한 셈이다. 논문의 뒷부분에는 농경지의 생태적 가치에 대해 연구한 결과들이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평가할 수 없었다고 실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논의 가치를 평가한 훌륭한 연구결과가 많은데 몰랐던 모양이다. 이쯤 되면 허탈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갯벌의 가치가 논 보다 100배 이상 크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는 외국의 그 논문에는 갯벌이나 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어떤 생태계와 다른 생태계를 비교하는 내용도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갯벌의 가치를 강조하고 싶은 편향된 신념과 외국의 자료를 무조건 맹신하는 잘못된 자세 때문에 갯벌의 가치가 논의 가치보다 100배 이상 크다는 소문 아닌 황당한 소문이 떠돌아다니는 셈이다. 갯벌에 대한 환상이 깨어진 것은 안타깝지만 논의 가치를 확인한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갯벌과 논의 생태적 가치는 어는 것이 클까? 모두가 인정하는 정답은 있을 수 없다. 누구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치를 우리가 아직도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갯벌의 가치가 논의 가치보다 100배 크다는 주장은 분명히 잘 못된 것이다. 그 논문을 좀 더 살펴보면 새만금 간척지를 어떻게 이용할 지에 대한 결론도 찾을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논은 습지로서의 다양한 기능을 갖는다. 그 가치는 해안습지보다도 훨씬 크다. 만일 새만금 간척지를 다른 용도로 이용하려 한다면 논의 다양한 생태적 기능을 포기하는 셈이다. 갯벌의 생태적 가치를 아까워하던 이들이 그보다 더 풍부한 논의 생태적 가치를 포기한다면 어불성설이 아닌가? 진정으로 환경을 생각한다면 새만금 갯벌을 논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최강원 농어촌연구원 책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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