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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영웅전 제1보

바둑영웅전 제1보白 가리가네 준이치 2단 黑 백남규 국수 1899년 10월 서울 한국의 국수산맥-백남규 방랑기객 최칠칠 제1보(1∼7) 영조 시절의 기인 최칠칠(崔七七)은 유찬홍에 못지 않은 고수였다고 전해진다. 본업이 화가인 최칠칠의 본명은 최북(崔北)이었는데 이름인 북자를 해자(解字)하여 최칠칠로 행세하기를 즐겼다. 「하경산수도(夏景山水)」와「관폭도(觀瀑圖)」의 작자인 최칠칠의 생애는 외롭고 거칠었다. 그는 자연을 몹시 사랑하여 주유천하를 일삼았고 말술을 사양하지 않는 호주가로 거의 취해서 살았다. 군자연하는 양반들이나 권력 드러내기 좋아하는 고관들을 경멸하여 방약무인이라는 정평이 났다. 유랑하며 익힌 바둑이 어느덧 무적의 경지에 올랐는데 성격이 괴퍅한 그는 때때로 악수를 둘 때마다 「이런 악수를 두다니 눈이 썩었지」하고 탄식하는 버릇이 있었다. 어느 날 취중에 악수를 두고는 분을 이기지 못하여 제손으로 제눈을 후벼내고 말았다. 이것이 그가 애꾸눈이 된 사연이라고 전해진다. 이러한 성격이었으므로 왕족과 바둑을 두더라도 늘 일수불퇴라고 하면서 물러주기를 매정히 거절하여 미움을 사곤 했다. 감흥이 솟으면 산수화를 즐겨 그렸고 그 그림은 장안에 인기가 높아 그림 청하는 자가 그치지 않았다. 자신이 잘된 작품이라고 여긴 그림에 대하여 손님이 값을 헐하게 지불하면 그 자리에서 그림을 발기발기 찢어 버리곤 했다. 소개하는 기보는 한국의 국수가 일본의 프로기사와 공식적으로 겨룬 최초의 대국보이다. 44세의 국수 백남규와 20세의 프로기사 가리가네의 대결. 가리가네는 조선반도를 바둑으로 평정하기 위해 서울에 찾아와 신문에다 큼직하게 광고를 냈다고 한다. 「한인 고수와 대국하고자 함」. 이 광고를 보고 백남규가 그를 찾아가 대국이 성사된 것이었다. 노승일·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0/07/16 17:22 ◀ 이전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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